이근철(캐롤라인대학교 교수)

학창 시절 함께 농땡이를 쳤는데, 친구보다 성적이 잘 안 나왔다면 화가 날 것이다. 직장 생활 하면서 똑같이 요령을 피우고도, 동기는 들키지 않고 자신만 들켜 상사에게 꾸중을 들었다면 좌절할 것이다. 성실히 일해서는 큰돈을 벌 수 없다며 부동산, 주식, 코인 등에 투자했는데, 쪽박을 찼다면 운이 나빴다고 할 것이다. ‘내 사주가 나빠 그런가?’ ‘조상의 음덕을 입지 못해 그런가?’

여당이나 야당이나 정치권은 여론에 민감하다. 응답률이 10% 전후밖에 안 되는 여론조사에도 일희일비한다. 조사 결과가 자기 당에 좋지 않으면 ‘우리 당이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하는 데도 왜 지지율이 낮지?’, ‘다른 당은 우리만큼 제대로 일을 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왜 지지율은 높지?’라고 하며, 가짜 뉴스와 편파 방송 때문이라고 푸념을 한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말했다. “과인은 흉년이 들면 백성들을 이주시켜주고 먹을 것도 주었소. 그런데 이웃 나라 정치를 살펴보면 과인이 마음 쓰는 것처럼 하지도 않는데도, 이웃 나라 백성은 더 적어지지 않고 과인의 백성은 더 많아지지도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맹자가 대답하여 말했다.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비유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쟁 중에 적에게 밀려 혹자는 백 보 이후에 멈추고, 혹자는 오십 보 이후에 멈췄습니다. 오십 보 간 사람이 백 보 간 사람을 비웃는다면 어떻겠습니까?” 『맹자』 「양혜왕 상」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오십 보 백 보’와 유사한 말이 많이 있다. ‘거기서 거기’, ‘그 나물에 그 밥’, ‘그 놈이 그 놈’, ‘막상막하’, ‘대동소이’, ‘피장파장’, 그리고 ‘도긴개긴’이란 말도 있다. 윷놀이 할 때 ‘도’나 ‘개’나 고작 한 끗 차이란 말이다. 충청도 사투리로는 ‘도찐개찐’이라고 한다. 자신이 얼마나 다른 사람보다 노력을 했는지,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민심을 살 일을 했는지는 돌아보지 않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푸념하는 자신에게 이런 말이 적용될 것이다.

양나라는 원래 위나라였다. 위나라는 전국시대 초창기에는 패권국이었으나, 혜왕 때에 이르러 국력이 급격히 쇠하여졌다. 혜왕도 초기에는 나름대로 인재를 등용하며 부국강병에 힘썼다. 어느 정도 힘이 생기자 이웃 조나라를 공격했다. 그러자 조나라가 제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제나라의 공격으로 크게 패하자, 이어서 진나라도 공격해 왔다. 두 나라로부터 큰 피해를 본 위나라는 수도를 안읍(安邑)에서 대량(大梁)으로 옮겼다. 고대 중국에서는 수도 이름을 따서 나라 이름으로도 불렀기 때문에, 이후 위나라를 양나라라고 부르며 위혜왕 대신 양혜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맹자』 책 첫 편에서도 『양혜왕』편이라고 부른다.

양혜왕의 정치는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패권정치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정치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을 이주시켜주고 양식도 주는 작은 선심을 베풀었다고 해서 백성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맹자는 힘주어 말한다. 백성들이 농업·어업·산림업에 종사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해주면서,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데 유감이 없도록 하는 것이 왕도의 시작이라고... 권력층의 개와 돼지가 일반 백성이 먹을 양식을 먹어도 단속할 줄 모르고, 나라에서는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어도 창고를 열 줄 모르며, 왕은 사람이 굶어 죽으면 ‘내 탓이 아니다. 흉년 탓이다’라고 하니, 이는 사람을 찔러 죽이고서 ‘내 탓이 아니다. 칼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라고...

성공에 운이 얼마만큼 작용하는지는 모르겠다. 대박이 나고 쪽박이 나는 것이, 사주 탓인지 조상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성실한 노력은 헛되지 않는다. 정치가에 대한 지지율은 분명히 국민들의 평가에 의한 것이다. 정치가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냉엄하다. 소수를 오래 속일 수 있고, 다수를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다수를 오래 속일 수는 없다.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면 지지율은 저절로 올라갈 것이다.

[이근철박사]
[이근철박사]

 

[이근철 박사]

- 철학박사

- 캐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

- 국민권익위 청렴연수원 청렴교육전문강사

- YCN 유림방송 교육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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