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철(캐롤라인대학교 교수)

30여 년 전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이 처음으로 시작될 때, 시험 과목의 하나였던 국민윤리를 학원에서 강의했던 적이 있었다. 시험 과목은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생 수준에 맞춰있었기 때문에 국민윤리 역시 고등학교 교과서 내용이 중심이었다. 당시 국민윤리에는 ‘Ⅰ. 인간과 윤리’, ‘Ⅱ. 윤리 사상의 흐름’, ‘Ⅲ. 사회와 윤리’, ‘Ⅳ. 국가와 윤리’, ‘Ⅴ. 민주주의의 이념과 현대 이데올로기의 문제’, ‘Ⅵ. 조국의 통일과 번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강의를 하면서도 Ⅱ장과 Ⅲ장 이외는 공인중개사 활동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옳음(The right, 정당함)’과 ‘좋음(The good, 선함)’이라는 두 개념이 윤리학의 중심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옮음’의 경우는 칸트를 시작으로 의무론적 윤리설로 발전했고, ‘좋음’의 경우는 벤담을 중심으로 목적론적 윤리설로 발전했다. 의무론적 윤리설은 인간의 행위나 행위 규칙의 옳고 그름은 목적이나 결과에 상관없이 양심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론이고, 목적론적 윤리설은 인간의 행위는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적에 얼마만큼 유용한가에 따라 옳고 그름이 구분된다는 이론이다. 이처럼 두 개념은 윤리에 대한 관점이 달르다. 그래서 두 개념이 서로 충돌할 때는 무엇을 우선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보자. ‘낙태는 살인에 해당하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산모가 위험하다면? ‘거짓말은 양심을 어긴 것이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자녀 교육을 위해 격려로 하는 말은? ‘어떠한 경우에도 법은 지켜야 한다.’ 그런데, 악법도 반드시 지켜야 하나? 전자는 ‘옳음’을 중시하는 의무론적 윤리설의 입장이고, 후자는 ‘좋음’을 중시하는 목적론적 윤리설의 입장이다. 과연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 것이 윤리적인 태도일까?

이에 대해 맹자와 양혜왕의 대화를 살펴보자. 양혜왕이 말했다. “선생께서 천 리를 멀리 여기지 않고 오셨으니 또한 장차 나의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왕은 하필 이로움(利)을 말하십니까? 역시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무엇으로 나의 나라를 이롭게 할까?’ 하시면, 대부(大夫)는 ‘무엇으로 나의 집을 이롭게 할까?’ 하며, 사(士)와 서인(庶人)들은 ‘무엇으로 나의 몸을 이롭게 할까?’ 하여 상하가 서로 이익을 다투게 되며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 진실로 의를 뒤로 하고 이로움을 앞세우면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하고서 그 어버이를 버리는 자는 있지 않으며, 의롭고서 그 임금을 뒤로하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왕께서는 역시 인과 의를 말해야 할 뿐입니다. 하필 이로움을 말하십니까?” 『맹자』 「양혜왕 상」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이로움(利)’을 ‘좋음’으로 보고 ‘의로움(義)’을 ‘옳음’으로 본다면, 맹자는 ‘옳음’을 중시하는 의무론적 윤리설의 입장과 같다. 의무론적 윤리설은 그 성격으로 볼 때 절대론적 윤리설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맹자는 윤리에 대해 항상 절대론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 맹자와 옥려자의 대화를 살펴보자. 맹자의 문하생 옥려자가 임나라 사람으로부터 ‘예를 지키는 것과 먹는 것, 예를 지키는 것과 여색을 취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고 묻자 대답을 못하고 맹자를 찾아왔다. 맹자가 말했다. “형의 팔을 비틀어서 빼앗아 먹으면 먹을 수 있고, 비틀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면 무릇 비틀겠는가? ”동쪽집의 담장을 넘어가서 그 처자를 끌어오면 아내를 얻고, 끌어오지 않으면 아내를 얻지 못한다면 무릇 끌어오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맹자』 「고자 하」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비틀겠는가?’ ‘끌어오겠는가?’라고 표현했지만 ‘비틀어야 한다’, ‘끌어와야 한다’라는 의미이다. 맹자는 먹는 것의 중한 것과 예의 가벼운 것, 여색을 취하는 것의 중한 것과 예의 가벼운 것을 서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다. 즉, 가벼운 예를 지키려고 굶어 죽거나, 가벼운 예를 지키려고 혼인을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은 맹자의 말은 ‘좋음’을 중시하는 목적론적 윤리설의 입장과 같다.

맹자는 어떤 경우에는 ‘옳음’을 중시하고, 어떤 경우에는 ‘좋음’을 중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상황에 따라 윤리적 판단을 해야 하는 상대론적 윤리설이 바람직하다는 것인가? 맹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생각하고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이나 목적을 고려하지 않고 ‘옳음’만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그렇다고 양심이나 법칙을 전혀 무시하고 ‘좋음’만을 기준으로 할 수도 없다. 바람직한 판단은, 양심이나 법칙을 기본으로 해서 상황이나 목적을 고려하는 것이다.

[이근철박사]
[이근철박사]

 

[이근철 박사]

- 철학박사

- 캐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

- 국민권익위 청렴연수원 청렴교육전문강사

- YCN 유림방송 교육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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