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동부의 자치구이며 1943년 구제 실시와 동시에 설치되면서 ‘동대문구’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동쪽으로 중랑천을 맞대고 중랑구, 광진구와 서쪽으로 종로구, 남쪽으로 성동구, 북쪽으로 성북구와 접해 있다.

[사진: 70년대 청량리 미주상가의 간판이 즐비한 모습, 출처: 네이버]
[사진: 70년대 청량리 미주상가의 간판이 즐비한 모습, 출처: 네이버]

종로부터 연결되어진 왕산로가 제기동, 청량리, 회기동, 이문동으로 이어져 있다. 이 왕산로를 따라 오랜시절 백화점과 청량리시장,경동시장등이 이어지며 과거 상업중심지로서의 면모를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분구로 좁아져 중심이 되어있는 청량리역일대는 과거 유명했던 집창촌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신설동, 장안동, 경희대 및 외대앞등 대학가로 이어지는 상권이 발달해 있다.

[사진: 70년대 청량리역 광장 모습, 동대문구 제공]
[사진: 70년대 청량리역 광장 모습, 동대문구 제공]

더구나 최근에는 경의중앙선,경춘선, 수인분당선등의 전철과 기존 1호선이 연계되며 커다란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로써 최근 서울시 도시기본계획2040에는 이 곳을 중심으로 한 서울 동북권 최대 교통,경제 중심지로서 동대문구의 위상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사진: 최근 청량리역사와 백화점 모습]
[사진: 최근 청량리역사와 백화점 모습]

 

서울 도심권에 인접한 부도심으로서의 역할을 지금도 충분히 소화하고 있으며, 앞으로 강남북을 연결하고, 서울을 비롯한 동서를 연결하는 교통과 상권의 지역중심으로 기대되고 있다.

[사진: 60년대 후반 종로에서 동대문방향으로 바라본 사진, 출처: 동대문구]
[사진: 60년대 후반 종로에서 동대문방향으로 바라본 사진, 출처: 동대문구]

 

이곳은 조선시대 동대문인 흥인지문이 지역의 태동임은 당연하다. 1943년 일제 경성부에서 구제(區制)가 시행되면서, 서울에 설치된 7개구 중 하나로 시작한다. 해방후 1970년대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면서 서울이 팽창했고, 이로인해 종로구와 중구는 도심공동화로 인구가 감소하고 주변구인 이 동대문구를 포함하여 서대문구, 성동구, 성북구등으로 인구가 밀집하게 되었고, 서울은 이에 따라 서울시내 행정구역을 조정하게 되었으며 이는 도심의 인구를 보충하는 수단이 되었다. 실제 동대문이 있던 창신동, 숭인동 일대는 종로구로 편입시켰고, 서대문구의 교남, 구기, 무악, 평창동일대가지 종로구로 아우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인해 동대문인 흥인지문과 서대문인 돈의문은 동대문구와 서대문구가 아닌 종로구에 편입되게 되는 웃지 못할 사연이 생기게 되었다.

[사진: 1890년대 동대문과 그 주변의 모습, 출처: 서울시]
[사진: 1890년대 동대문과 그 주변의 모습, 출처: 서울시]

시대를 거슬러올라가서 동대문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성저십리 인창방 지역이었으며, 답십리, 전농동, 청량리 일부 지역은 양주군 남면 중량포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그랬다가 일제 강점기 1914년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 편입되었고, 1936년 현 동대문구 지역이 경성부에 재편입된다.

[사진: 해방기 전차와 동대문의 모습, 출처: 서울시 역사자료]
[사진: 해방기 전차와 동대문의 모습, 출처: 서울시 역사자료]

해방후 1949년엔 성북동, 돈암동, 안암동, 종암동을 성북구로 분구 시키고, 55년 신설동일부를 보문동으로 분리했으며, 1963년 양주군 구리면의 일부(현재 중랑구) 및 성동구 면목동을 편입했다. 75년에는 동대문 일대의 숭인동과 창신동을 종로구로 분구하고 보문동을 성북구로 넘겼으며, 용두동, 답십리동 일부를 성동구의 군자동, 중곡동 일부를 주고 받아 장안동을 신설하게 된다. 이후 88년 중랑천 동쪽을 중랑구로 분구시켰다가 중랑구 중화2동 일대 중랑천 일부지역을 각각 동대문구 이문동, 휘경동으로 편입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사진: 1970년대 동대문 주변, 출처: 서울시]
[사진: 1970년대 동대문 주변, 출처: 서울시]

 인구는 1960년대까지는 50만정도 였으나 1970년대 급증하여 74만에 이르고 1980년대 중반에는 94만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중랑구가 분구되고 다시 90년대 50만에서 다시 시작한후 지속적으로 인구가 줄어 2024년에는 34만정도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사진: 선농단]
[사진: 선농단]

 청량리는 예부터 서울의 주요 번화가로 유명하며 1899년 개통된 서울전차도 청량리를 종점으로 운행하고 1943년 동대문구 설치되어 설렁탕의 어원(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먹은 탕이라 하여 설렁탕이라고 불리게 된 사연)이 된 선농단과 홍릉의 자리로 지정이 될 정도로 풍수적으로도 길한 지역이라는 평을 듣는다.

[사진: 최초의 청량리 전차역, 출처: 서울시 역사자료]
[사진: 최초의 청량리 전차역, 출처: 서울시 역사자료]

 청량리는 앞서말한 서울의 전차역과 강원도로 가는 구철도의 종착역으로 발달함과 동시에 이지역 상권이 다른 부도심과 함께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의 상권이 들어서게 되면서 성장이 정체되고 과거의 명성이 상당히 위축되어 오래전부터 개발된 시가지가 적당한시기에 재개발되지 못해 노후화를 겪었다. 이로인해 청량리의 상업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인근 지역에서 담당하는 양상도 보였고, 청량리로의 접근이 곤란한 지역은 종로와 중구의 상권을 이용하는 양상을 보이게 되었으며, 이는 청량리의 성장이 정체되는 또다른 요인이 되었다.

[사진: 2010년 청량리일대 집창촌과 주변 사진, 출처: 네이버]
[사진: 2010년 청량리일대 집창촌과 주변 사진, 출처: 네이버]

그러나 2010년도를 지나며 청량리역 민자역사와 청량리역환승센터가 완공되었고, 지역성장의 도약하는 계기가 마련되었고, 재건축과 재개발이 급속도로 진전되는가 싶더니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은 종로에서부터 왕산로를 따라가면서 초고층빌딩과 신축아파트, 오피스텔이 줄을지어 들어서게 된다. 그에 더해 청량리역의 철도노선 광역화와 GTX노선이 예고되고 있어, 동대문구의 부활은 지금 도약기를 맞고 있다.

[사진: 최근 왕산로변 새로 지어진 건물과 도로]
[사진: 최근 왕산로변 새로 지어진 건물과 도로]

 반면, 동대문구는 생활여건과 밀접한 녹지면적이 취약하다. 급속도로 진전되는 개발형태로 인해 녹지를 조성할 공터가 없다는 이유이다. 이는 동대문구의 태동기부터 도심의 옆에서 급속도로 변화하는 인구이동으로 인해 서울에서 가장빠른 변화양상을 보인 탓이다. 70년대 경제성장기에도 원도심으로부터 쏟아지는 사람들이 몰렸고, 이에 따른 난개발이 끊임없이 진행되어 왔으며, 그에 더해 재개발,재건축이 급히 진행되는 곳이다 보니 도시계획이 따라가지 못한 결과가 우후죽순 들어선 빌라들과 주택들이 들어서게 되었던 지역이다. 다만, 중간중간 홍릉을 비롯하여 성북천, 정릉천, 중랑천, 청계천등의 자연녹지가 적지 않아 다행인 면이 있으나, 반면 큰산이나 큰 공원이 없다는 이유로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될 만한 산이나 녹지가 없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사진: 청량리 역사 건너편에서 청량리역 쪽을 바라본 전경]
[사진: 청량리 역사 건너편에서 청량리역 쪽을 바라본 전경]

동대문구는 지역 전체가 재개발 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재개발, 재건축 및 뉴타운 개발 구역이 많은 구이다. 뉴타운으로 지정된 이후 이권다툼등의 이유로 중지되었던 답십리16구역을 비롯하여, 전농동-답십리 뉴타운, 이문-휘경 뉴타운지역 재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동부청과시장일대와 과거 지역개발의 난제였던 소위 청량리 588로 불리우던 청량리4구역도 2016년과 2018년 착공되어 진행중이며 50층과 60층을 웃도는 주상복합 초고층아파트와 상업시설로 변모하고 있다.

동대문구의 정비사업은 서울시 정보공개현황을 보면 44개 구역에서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이중 3개의 조합이 청산이 됐고, 41개의 사업장이 진행중인 것으로 보인다. 청량리는 그렇게 지역균형발전을 선도하는 동북권 혁신산업 및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사진: 동대문구 청량리8구역 주택재개발사업부지 조감도, 출처: 서울시]
[사진: 동대문구 청량리8구역 주택재개발사업부지 조감도, 출처: 서울시]

 

동대문은 도심형 특화산업 활성화를 위한 창조산업의 지원 거점으로 패션,문화등 복합기능을 강화한 관광,상업 등 도심의 산업기능을 보완하는 도심의 중심지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동대문구는 대부분 해발 100m이하 저지대로 이루어져 배봉산과 홍릉일대 일부 녹지를 제외하고는 하천으로 이르는 주거에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 그래서 좋은 수변환경을 가진 잠재력까지 포함하면 충분한 개발과 어우르는 도시문화기능도 강화되고 있어서 동대문구의 거주 여건은 더욱더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 배봉산 정상에서 본 동대문구일대]
[사진: 배봉산 정상에서 본 동대문구일대]

 한가지 부족한 점은 강남권 접근성이 상당히 열악한 점인데, 청량리역에 수인분당선이 연결되었지만 배차간격이 너무 길다. 하지만, 2030년 완공을 목표로한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청량리역이 포함되어 상당히 개선될 여지가 있고, GTX환승으로 강남의 삼성역과 여의도 금융1번지로의 접근이 용이해지게 되면 지역여건도 빠르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동대문구의 대학교는 경희대,한국외대,서울시립대등이 있어 학생상권이 이를 중심으로 발달하였고 청량리역주변이 개발되고 상권이 커지면서, 이와 연계되고 또한 지역내 청량리청과물시장등과 같은 재래시장이 매우 발달하여 다양한 쇼핑문화를 즐길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사진: 동대문구 이문동 재개발사업지역 현수막과 주변 상황, 출처: 네이버]
[사진: 동대문구 이문동 재개발사업지역 현수막과 주변 상황, 출처: 네이버]

 또한 과거 열악했던 이문동,휘경동등이 재개발되고 있고, 이미 재개발이 완료된 곳도 많고 도심을 생활권으로 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중산층이상 고소득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앞서말한 명문대 인근이고 대학병원이 곳곳에 있어 의료수요가 많은 고소득 어르신들이 많이 선호하는 지역이다. 반대로 중간중간 열악한 지역이 산재해 있어 낙후되어 있는 이들 지역에 저소득층의 소외된 서민들도 꽤많이 살고 있어 빈부격차가 극심해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서울시와 동대문구의 서민층 대상 정책이 끊임없이 발길을 향하고 있고, 도심권 주거여건도 점차 의지를 가지고 개선해가고 있기 때문에 열악한 주거여건은 점차 개선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울시내 역사와 시대적인 내재적인 가치는 중요성이 떨어지고, 재개발, 재건축주민들이 사업성에만 골몰하여 지나치게 고층 과밀화되고 시대적, 역사적 기억이 사라지는 경향이 우려스럽고, 철거후 개발로 인해 전통재래시장등이나 70~80년대 시대를 풍미하던 건물이 하나둘 사라져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 서울시 정비사업 방향에 대한 교육자료 일부, 제공: 서울시]
[사진: 서울시 정비사업 방향에 대한 교육자료 일부, 제공: 서울시]

다행인점은 서울시는 이러한 지역적 특성이 강한 사업지에 철거후 개발을 지양하고 도심의 다양성과 장소성을 살릴 수 있는 개별적인 예정구역을 지정하는 등의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어 서울도심을 이은 이곳 동대문구 일대도 지역적인 특색을 가지는 다원적 도시정비 및 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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