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전국대전_현실유머

 

 

 

 

 

 

 

 

참여작가 ▶ 강승호, 권영재, 김민유, 김세연, 김수빈, 김슬아, 김지원, 김지혜, 남지강, 노경민, 박예원, 박정아, 박지원, 방세현, 변다효, 서우정, 서은별, 심지민, 안휘민, 유슬비, 유 정, 윤사유, 이소희, 임지수, 주상돈, 최예나

일정 ▶ 2024. 03. 13 ~ 2024. 04. 03

관람시간 ▶ 12:00 ~ 18:00(월, 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신사옥

서울시 은평구 통일로66길 9, 2F

www.instagram.com/sinsaok22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가장자리를 향해 꿈틀대고 있는 미술

홍희진(독립 큐레이터)

 

당신이 찾아온 이번 전시는 미술인의 외침이다. 동시대의 역사를 보면 지난 1990년대 전지구화를 거쳐 탈서구중심적, 수평적, 비인간적 사고를 지향하며 인문학적 상상력과 함께 개별 개체 존재 그 자체를 탐구하는 중이다. 다양성이 체화되어 체계적 해석보다는 오류가 발생하는 지점이 주목되고 기존의 자연성은 자연스레 미지의 세계로 뒷걸음쳐 앎과 끊임없이 거리를 두고 있다. 균형감은 불균등한 세계를 알아채고 스스로 무게 중심을 가질 때 획득할 수 있다. 동일하게 똑바로 걷기보다 뒤뚱거리거나 종종 넘어지는 어처구니없는 모양새가 생의 강력함을 알리는 창조적인 시대인 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지영, 옥정호 두 미술 작가는 ‘아트스페이스 신사옥’을 통해 ‘전시미술’을 하고 있다. 미술의 역사가 세워지는 곳에는 언제나 미술작가가 있다. 큐레이터 중심으로 전시가 부상하는 시대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아티스트큐레이터가 미술의 역사를 썼다. 마치 19세기 후반 귀스타브 쿠르베가 거부당한 기존 체제에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스스로 개인전을 기획한 것처럼, 20세기 초반 마르셀 뒤샹이 레디메이드 개념으로 사물을 ‘선택’해 예술로 분류하는 창의력을 발휘한 것처럼, 20세기 중반 앨런 캐프로가 갤러리를 운영해 자신이 직접 해프닝 예술을 창시한 것처럼, 조지 마키우나스가 플럭서스 선언을 통해 플럭서스 하우스 협동조합을 기획한 것처럼, 20세기 후반 그룹 머테리얼이 뉴욕 거리에서 사회정치적 발언을 수년간 지속해오며 현실을 밝혀온 것처럼 말이다. 미술은 철학의 문제와 같이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과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해방에 공헌하는 문제를 전시대적으로 갖고 있는데 이 영속의 과제에 맞서 두 미술 작가는 미술 본연의 일상적인 문제들을 미술 시스템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형태를 ‘정치미술’, ‘사회비판적 미술’, ‘포스트민중미술’, ‘시스템미술’이라고도 부를 수 있지만 이번 기획의 경우는 동시대 전시 고유의 속성에 큐레토리얼 스테이트먼트가 강조되는 시대 미술 작가가 소유한 공간에서 전시를 매개로 작가적 시선을 나타내는 ‘전시미술’이라고 정의해본다.

아트스페이스 신사옥의 운영자이자 미술작가인 아티스트큐레이터 이지영, 옥정호는 가을과 겨울이라는 두 계절 간 전국의 조형예술과, 동양화, 서양화, 조각과, 사진과 등 미술학과가 있는 대학교의 학부 졸업생들의 전시, 일명 ‘졸전’을 눈으로 대면하고 그 졸업 작품들 가운데 ‘가능성 있는’ 예비작가를 선별한다. 여기서 우리는 ‘가능성 있는’ 작가는 누구이며, ‘가능성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을 배우고 연마할 수 있는지 미술 그 자체와 미술교육 시스템에 대한 기초적인 질문을 갖는다. 이 질문은 미술 대학교라는 고등교육체계 안에서 작품성을 판단하는 기준과 미술 작가라는 직업성 형성에 대한 얘기들로 이어진다. 이 얘기를 좀 더 얽혀 풀어내 보자면, 작품을 만들게 하는 주체에 대한 질문이며, 작업이 작품이 되는 순간에 대한 감각이며, 시스템 안 교육이 끝나고 미술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지 진지한 예측이고, 지금 하고 있고, 앞으로 추구하는 예술이 무엇인지, 결국 예술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얘기이다. 대학교 학부생의 지난 미술 교육 결과물로 내보인 대학교 학부 졸업생들 전시에서 이러한 선별이 가능한지 의문을 앞서 품어 보지만, 이번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 또한 미술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작가 선별 기준들과 동일하게 적용되는 면모를 발견한다. 작품과 작가를 모두 대면 후 초청 방식으로 열과 성을 다해 숱한 고민을 거쳐 ‘엄선된’ 예비작가들로 구성된 전시이다. 이것은 미술 지원시스템에서 놓치고 있는 대상을 발굴하여 미술작가가 정책적 제안을 하는 취지도 아니고, 기회평등 관점에서 자칫 예비 작가들을 무분별하게 포용하며 전시 공간운영자이자 선배 미술인으로서 전시를 열어주려는 선행은 더더욱 아니다. 기획단인 두 미술작가는 특정 전시를 목적에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예술만을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 수 있을 시간이라고 미술학부 생활에서 만든 작품들에 주목한다. 작가생애 초기의 고유성과 가치를 귀히 생각해서 예비 작가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미술 언어들을 찾아 드러내 주고 있다.

이번 전시 《전국대전》은 2022년 아트스페이스 신사옥 설립해와 그 역사를 함께 하면서 《프로젝트 올작(올해의 모든 졸업 전시)》라는 전국 미술대학교 졸업전시 탐방 프로젝트로 시작을 하여 차기년도에 전시형태로 나타나는 아트스페이스 신사옥 기획의 장기 프로그램이다. 첫 해의 1회 《전국대전》은 두 번에 걸쳐 연이어 진행하며 손에 꼽는 예비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는데 1부(2023.2.24.~3.10.)에서는 박진희, 서희림, 이정윤, 위수빈, 정영권 예비작가가 참여했고, 2부(2023.3.17.~3.31.)에서는 구지윤, 김상휘, 김우섭, 김지원, 유문선, 장이륜 예비작가가 참여했다. 역량 있는 젊은 미술인을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세계를 드러내주는 플랫폼 역할로서 지난 한국미술의 전시 역사에서 “미술대학, 뭘 가르치나”(공장미술제 2회에서 진행) 등의 논쟁적인 워크숍으로 예술공론장을 펼치며, 대학생, 대학원생, 강사 등 백여 명이 ‘대학연합미술제’ 수준의 대규모 전시에 참여했던 ‘공장미술제’(총 4회, 1999년에 1회 개최)가 있었고, 2008년 이래 아시아 대학생·청년작가 미술축제로서 현재는 대규모 아트페어 형태로 진행 중인 ‘아시아프’(ASYAAF, 아시아 국적을 가진 대학생 및 35세 이하의 젊은 작가 대상)가 있다. 《전국대전》은 졸업전시 현장에서 만남을 통해 시작되고, 참여 규모면에서 크게 다르지만 젊은 미술인을 응원하고 미술현장과 미술교육 현장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기획의도의 출발에서 그 결을 함께 한다.

첫 해의 《전국대전》이 서울 중심의 문화 집중 현상의 문제점을 계기로 ‘서울 외 지역에 발생한 틈들을 작게나마 메우고자’(기획 글에서 발췌) 지역안배를 고려하면서 선별한 예비작가들의 작품들을 특정한 주제 없이 소개하였다면 이번 전시는 좀 다르다. 두 번째 해인 2회 《전국대전》은 작품성과 작가로서의 지속성을 기준으로 초대하였고, 전국 미술대학교 졸업전시를 탐방하는 ‘올작’ 프로젝트 말미에 기획단은 ‘현실유머’라는 주제를 후차적으로 떠올린다. 기획단이 발견한 ‘현실유머’는 어떻게 나타나게 된 것일까. 세대교체가 30년 주기를 가지고 있다는 환상 아래 1990년대 초중반을 떠올릴 수 있다. 당시 한국은 정권교체(1993)로 문민정부와 함께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1993), 성수대교붕괴사건(1994), 삼풍백화점붕괴사고(1995), 대구 상인동 가스폭팔 사고(1995) 등 수백 명의 대규모 사상자를 유난히도 수차례 발생시킨 사건·사고의 혼란을 겪었다. 당시 힙합댄스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곡 <시대유감>은 한 소녀의 편지가 발화되어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제도를 폐지시켰다. 이러한 1990년대 풍경에서 세계관이 형성되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어른이 된 우리(기획단 기준)이다. 동시대 예술로 진입하면서 미술을 넘어서 과학, 미술을 넘어서 철학, ‘미술을 넘어서’ 라는 문구로 기존 미술을 정중앙으로 옮겨 고착해두지만 미술은 언제나 가장자리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고, 미술의 자유는 사회에 닿아있지 않은 적이 없다. 때론 침묵으로 함구하고 때론 토설하지만 이 또한 사회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는 미술인이 바라보는 이 시대의 ‘힙’은 무엇이며 어떠한 감각을 재분배하고 이미지를 생성해낼 수 있을지 시차적 동시성 관점에서 곧 사회로 나올 예비작가들을 살펴볼 수 있다. 2024년에 졸업을 하는 세대가 겪은 4·16 세월호 참사(2014), COVID-19(2019년 이래 진행 중), 10·29 이태원 참사(2022)는 그들을 어떤 예술로 이끌었는지, 말해야하는 사회의 면모와 자신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는 어떤 예술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 말이다. 미술은 기본적으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서 젊은이들이 익숙하지 않게 겪는 지리멸렬, 공허로 뒤덮인 세계의 모양새, '나'라는 실존을 찾아가는 암흑, '나'로 묶이지 않는 타자들의 발견,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너절한 일상, 절멸할 것 같은 사랑, 고뇌의 시작을 여는 독립생활, 감당해야하는 죽음들의 등장 등을 비유나 감각의 언어로 드러낼 수 있다. 들 끊는 피와 젊음의 고뇌에서 표출되는 예술은 비릿하고 정돈 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예비작가들이 선보이는 이번 작품들은 이미지와 형상, 영상 설치물 이상으로 사회 미학이 작동하는 지금 이 시대를 얽혀놓은 응결체이자 표출물이다. 예술의 사회성과 사회의 예술성이 시대의 결을 달리하며 재등장하는 시점이다. 맞서는 자세로 역사를 쌓아온 미술은 기존 질서, 전통, 체제를 넘나들며 저항, 체념, 비판, 침묵의 모습을 띄어오고 있다. 움트는 미술은 젊다. 젊은이들의 미술이 다시 현실을 한국 전역에서 떠들어대고 있다. 미술작가이자 아티스트큐레이터인 이지영, 옥정호는 《전국대전》 전시를 통해 우리에게 미술의 ‘현실유머’ 시대가 도착해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 2024 전국대전 - 신진 작가들의 현실 비판적 유머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작년에 이어 올해 진행되는 《2024 전국대전》은 전시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전국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전시임을 표방한다. 다만 이 전시는 졸업을 앞둔 예비 작가 혹은 신진 작가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전국 규모를 지향하는 여타 전시와 차별성을 지닌다. 특히, 국내 미술 현장으로부터 소외된 지역 대학 졸업생들을 주목했던 작년 전시와 다르게, 2024년 전시는 지역 분배보다는 역량 있는 신진 작가를 찾아 발굴하는 데 주목했다. 기획자들은 전국의 55개 미술대학의 졸업 전시를 86회 방문하고, 졸업 작품, 포트폴리오, 줌 인터뷰 등 총 3회의 심사를 거쳐 최종 26인을 참여 작가로 선정했다. 기획자들은, 이들이 저마다 다양한 작품 세계에 천착하면서도, 주류 세계로 잠입하기 전 단계의 신진 작가로서 현실 비판적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그들만의 유머를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을 분석하면서, 전시 부제로 ‘현실 유머’를 내세웠다.

 

II. 비주류로 출발하는 이머징 아티스트의 현재적 위상

여기 미술대학을 갓 졸업하고 ‘예비 작가, 신진 작가’라는 이름으로 미술 현장에 나선 이들이 있다. 26인의 《2024 전국대전》 참여 작가들은, 연령상 젊은 작가들이며, 대개 무명이며, 아직은 전시 경력이 일천한 '거의 새로운 얼굴'이다. 이들은 현재 미술 현장의 중추 세력이 아니지만 훗날 미술 현장의 중심 세력이 될 미래를 꿈꾸는 미술가 주체들이라는 점에서, ‘차세대 작가’, 혹은 떠오르는 작가라는 의미에서 이머징아티스트(emerging artist)로 부를 만하다. 아울러 이들은, 상투화된 조형 언어를 오랜 실험으로 도달한 완숙함의 경지라고 우기는 기성세대의 작가들과 달리, 경계 없는 아방가르드적 실험을 주저하지 않는 관계로 새롭거나 힘 있는 ‘신예(新銳, new and superior)’ 혹은 ‘신예 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렇다. 이들은 기성세대가 구축한 관성화된 미술계에 이견을 제기하고 그것을 깨뜨리려는 아방가르드의 정신을 품고 산다. 이들은 ‘서로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창작과 매개 사이에 벌어지는 미술의 공동 음모에 아직은 오염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 예비 작가 혹은 신진 작가들이 맞닥뜨린 난관이 도처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먼저 예비 작가들은 미술대학이라는 수련의 장을 떠나기 전까지, 교수나 선배의 ‘가르침 아닌 가르침’에 오랫동안 훈육되어 왔던 까닭에, 그들이 품은 아방가르드 정신에 필적할 만한 조형적 결과물을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한국의 미술 현장이 학맥과 인맥 등 인간관계로 얽혀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지금 신진의 순수 정신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오염되기 십상이다. 한편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오랜 아포리즘이 실현된 21세기 다원주의 미술의 시대에 기성세대 작가들에 대한 차별성을 도모하는 신진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아방가르드 정신에 대한 형식 실험 자체는 이미 효용성을 상실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들이 자력으로 주류 세계에 성공적으로 편입하는 일이란 쉬운 것일까? 그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일보다 더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무엇보다 이들은 주류를 향한 문 앞에 서있기 때문이다. 생계와 작업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미술가로서의 이름과 정체성 그리고 자신의 작업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비주류로 출발해서 오늘을 사는 이머징 아티스트, 즉 신진 작가들의 현재적 위상은 불투명하다. 나아가 불안하기조차 하다.

 

III. 네트워킹하는 신진 작가들의 탈영토화

《2024 전국대전》은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전국의 예비 작가 혹은 신진 작가들을 서울에 자리한 아트스페이스 신사옥으로 집결하여, 향후 이들의 자생적인 네트워킹이 자라는 토양을 제공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언급하는 아비투스(Habitus)는 우리의 신진 작가들이 주류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공유하는 네트워크화된 일종의 집단 무의식이자 공통 성향이 된다. 물론 기득권 세력의 아비투스 역시 존재하지만, 신진 세력에게 이것은 일종의 연대 의식과 같은 것으로 기득권을 누리는 기층 계급과 그들이 만든 상징 권력(pouvoir symbolique)에 저항하는 치열한 상징 투쟁(Lutte symbolique)을 견인한다.

예비 작가, 신진 작가들이 벌이는 상징 투쟁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기성 작가들뿐만 아니라 기층 계급의 경제 자본, 문화 자본을 한데 아우르는 상징 자본의 구조적 질서를 해체하고 그들이 획책한 ‘구별짓기(distinction)’를 무너뜨리는 민주적 실천을 감행하는 것이다. 토끼를 잡으려면 토끼 굴에 들어가라고 했던가? 신진은 주류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주류의 문을 지나쳐야 한다. 다만 기성 작가들이 구축한 동굴의 깊은 세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계로 재편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미학 내부적으로는 누군가 더 이상 미술 형식에 새로움이 없다고 단언할지라도 기성 작가들의 작업과는 다른 새로움을 찾아 창의적 조형 실험을 거듭하는 일이며 미학 외부적으로는 기성 작가들이 이미 구축한 질서 안에 거주하기보다 신진 작가들(만)이 공유하는 네트워킹을 새롭게 취하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성세대가 구축한 그릇된 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오인(méconnaissance)을 탈주하고 당면한 미술 현장의 개혁을 재구조화하고 재편할 수 있을 것이다.

창의적 조형 실험과 신진 작가들의 새로운 네트워킹?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2024 전국대전》에 참여하는 신진 작가들의 실천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그것은 제도권의 입구에 분명히 들어가되 그 안에서 기층 계급의 질서를 해체하고 탈주하게 만드는 탈중심 혹은 다중심 구조의 네트워크를 예술의 장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신진이 품은 비주류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실천하는 소수미술(art mineur)과 소수그룹(groupe mineur)을 형성하는 것이다. 소수미술과 소수그룹이라고? 이것은 들뢰즈와 가타리(Gilles Deleuze et Felix Guattari)의 소수문학(littérature mineure) 논의로부터 소수자 개념을 빌려, 소수 작가(artiste minoritaire)라는 예술 생태계를 변환시킬 주체적 작가상을 제안하는 것이다.

'소수 작가'란 어떠한 존재인가? 그것은, 들뢰즈가 카프카의 문학에서 발견했듯이, 이른바 대가(大家)들의 다수 문학(littérature majeure)의 정형화된 글쓰기로부터 탈주하는 소수 문학의 비정형화된 글쓰기를 실행하는 주체를 지칭한다. 즉 언어를 동질화시키고 통일시키는 권력과 지배의 다수 언어를 피지배 언어인 소수 언어로 대치시키는 작업을 실행하는 주체이다. 시각예술에서 예를 들면 표준이라는 척도로 20세기를 이끌었던 추상이라는 지배적 담론의 다수 언어에 종속되지 않은 채 그것이 버리려고 했던 잉여적 존재를 변형하는 오늘날 다원화된 추상의 실험 주체가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프레임 내부로만 귀속하려고 했던 모든 회화적 행위 너머에서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 모든 소수적 요소를 새로운 실험으로 견인해 오는 어떠한 것일 수도 있겠다. 마치 들뢰즈가 소수문학의 예로 조이스(James Joyce)와 베케트(Samuel Beckett)가 아일랜드 영어를 탈영토화하거나 카프카(Franz Kafka)가 프라하의 독일어를 탈영토화하는 과정을 설명했듯이 《2024 전국대전》참여 작가들은 소수 작가의 이상을 자기 방식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예술이라는 행위의 풍요화와 빈곤화를 오간다. 마치 조이스가 패러디, 속어, 모국어 의성어까지 혼합하며 풍부하게 하려는 풍요화의 태도로 주류 혹은 다수의 언어를 탈영토화시켰다면 베케트나 카프카는 자발적인 언어적 금욕주의를 통해 빈곤화의 태도로 그것을 탈영토화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IV. 에필로그- 전유의 현실 유머

《2024 전국대전》이 참여 작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특성으로 제시하는 주제어 ‘현실 유머’는 탈영토화의 관점에서 매우 유효하다. 신진 작가의 ‘현실 비판적 유머’가 주류 혹은 다수 언어를 비트는 풍요화나 빈곤화를 촉발하면서 탈영토화를 지속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여기서 ‘유머’는 현실 풍자뿐 아니라 기존의 현실을 가져와 비틀기를 시도하는 전유(appropriation)의 개념에 육박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모든 참여 작품이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전시 취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의 현실 비판적 유머가 지닌 전유의 미학이 무엇인지 탈영토화의 관점에서 간략히 해설한다.

1) 탈락자의 시선에 주목하는 미디어아트(강승호), 2) 버려진 오브제나 패러디 이미지를 통해 의식주 너머의 비주류의 세계를 견인하는 멀티 미디어아트(김민유), 3) 죽은 것들을 소환하는 뉴 바니타스 한국화(김세연), 4) 상투화된 일상을 회의하고 비트는 개념적 설치(김수빈), 5) 구조화된 도시 풍경의 이면에 주목하는 사진, 영상(김지원), 6) 현실 속 정보를 변주하는 스토리텔링 기반의 다매체 실험(김지혜), 7) 도시 공간을 심리적으로 번안하는 다매체 실험(박예원), 8) 도시 삶을 비판적으로 풍자하는 매체 실험(박정아), 9) 현실 속 이야기를 새롭게 작화하는 회화(방세현), 10) 현실 속 사물을 연약한 재료로 재현하는 만들어진 심리적 오브제(변다효), 11) 청년기의 자전적 일상의 작품화(서우정) 12) 타자의 내러티브에 감정 이입하는 상상 드로잉(이소희), 13) 현대인의 삶을 전유하는 퍼포먼스 영상(임지수), 14) 신체에 담긴 인간 정체성을 탐구하는 영상(권영재), 15) 시선의 문제와 상실된 흔적을 상상으로 추적하는 회화(김슬아), 16) 일상 사물의 조각적 변주를 통한 심리 탐구(남지강), 17) 비정형 덩어리로 추적하는 조각과 일상의 전유적 아카이브(노경민), 18) 통제에 대한 저항을 번안하는 회화 및 다매체 작업(박지원), 19) 인간의 근원적 불안 감정을 탐구하는 현대 한국화(서은별), 20) 에코 페미니즘 관점의 다매체 작업(심지민), 21) 부재와 상실의 흔적을 탐구하는 회화(안휘민), 22) 현대인의 욕망이 투영된 실내 풍경(유슬비), 23) 현실을 투영하는 무작위적 회화 행위(유정), 24) 주변인을 재현하고 자아를 탐구하는 회화(윤사유), 25) 꿈을 담은 주변인 초상(주상돈), 26)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비판적으로 풍자하고 전유하는 다매체 작업(최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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