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중개사 Report : 새로운 부(富)의 축으로 해방 후 압구정동의 주택개발사와 현재

 

 

1950년대 압구정동, -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
1950년대 압구정동, -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

 

하진중개사 

REPORT

( 글, 사진 두하진 )

압구정동

특별보고서

 

아버지가 '압구정동' 사람이면

그 자식들도 영원히 '압구정동'사람으로 남을 것이고

아버지가 '압구정동' 사람이 아니면

그 자식들도 대부분 '압구정동' 사람들과 그 자식들이

한 세상 잘사는거나 구경하다 죽을수 밖에 없다. 

- 『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 , 이순원 장편소설 -

 

 

새로운 부(富)의 축으로 : 압구정동 편

 

인구과밀 강북, 영동개발의 꿈

 

한국 현대사 강남개발사 연표 - 왼쪽 사진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
한국 현대사 강남개발사 연표 - 왼쪽 사진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

 

  '영동개발'은 영등포의 '동쪽'을 개발한다는 뜻이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강남지역 개발을 의미한다. 강남 어딘가 주소지로 들어본 듯 익숙하면서도 막상 영동의 뜻을 물어보면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영동대교부터 삼성역 앞 큰 대로를 지나 개포동, 일원동까지 이어지는 5.7km의 10~14차선 도로의 도로 이름도 그 시절 이름을 따와 영동대로라는 도로명 주소지명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이후 과도기를 겪은 후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눈에 띄게 인구가 증가했고 강북 도심이 인구 과밀로 인해 주택지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게 되었다. 강남개발에 대한 구상을 하기 위해 「남서울계획」과「새서울벽지계획」이 발표되었다. 1966년 1월 발표된 「남서울계획」은 오늘날 강남, 서초 지역뿐만 아니라 관악구, 동작구 일부까지 포함한 방대한 지역에 새로운 주택지와 경공업지대를 건설한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이 계획은 그 당시 실무자에 의하면 남서울이라는 것 자체가 지금의 강남을 뜻하며, 강남구, 서초구 개발 계획이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압구정동은 1968년 착수된 『영동지구구획정리사업』에 의해 형성되지만, 서울의 팽창으로 인한 강남개발의 꿈은 19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현실화 되었다.

 

영동지구 초기안 전체지도 1971년 -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
영동지구 초기안 전체지도 1971년 -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

 

경부고속도로 그리고 강남개발

  현재의 강남과 강북을 잇는 중심 교통의 요지로 잘 알려져 있는 한남대로는 예전엔 '제3한강교'라는 이름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7년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내걸었고, 제3한강교 남단을 기점으로 서울과 부산까지 428km를 잇는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이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 전역을 잇는 고속도로로서 1970년대 고도성장을 견인하는 것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된다.  또한 강남개발을 본격화 한 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
경부고속도로 건설  -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

  '영동'은 현재 강남구, 서초구 일대로 영동, 남서울 그리고 강남 등으로 불렸다. 이렇게 여러 지명으로 불린 이유는 그만큼 이 지역 자체에 대한 고유 성격을 가지기 보다는 아직 개발 전의 강남이기도 하였고 영향력이 아직 미미하였기 때문에 주변 지역과의 지리적인 관계속에서 지역명이 결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영동개발이 결정된 것은 1966년이었으나, 실제 이 사업이 시행된 것은 1968년 현재의 서초구인 영동1지구에 먼저 시행이 되었고 현재의 강남구인 영동2지구는 1971년부터 개발이 되었다. 영동 1,2지구는 총면적이 2580만 8천 평방미터에 달하는 넓은 규모로서, 이 개발을 통하여 현재의 압구정동이 위치한 강남구 그리고 서초구가 완성이 되었다.

 

압구정 시영아파트 분양

1971년 압구정 시영아파트의 모습 -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
1971년 압구정 시영아파트의 모습 -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

  서울시는 강북을 억제하고 강남개발을 촉진하는 다양한 정책을 펼쳤는데, 이에 공무원 아파트 건설, 공공기관 이전, 특정시설 제한 및 도심 재개발지구 지정을 통한 강북의 억제, 학교, 고속버스터미널 등의 강남 이전 등 강남에 집중하여 인프라 건설을 촉진하였다.  이 인프라 건설 촉진 정책에서 가장 첫 번째로 시도한 것은 바로 공무원 아파트와 시영주택 건설이다.  논현동 공무원 아파트는 1971년 12월 논현동에 무주택 공무원들 중 희망자에게 분양을 하였고 이어 1972년 12월부터 1973년 초까지 압구정동, 논현동, 학동, 청담동 등지에 시영주택 8개 단지 1,350동을 지어 일반 분양하였다. 여기에 시내버스 노선을 강제 배치하였고, 이후 이 단지를 중심으로 주택 건설이 되기 시작하여 점차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도시로서의 강남 그리고 압구정

  제3한강교와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인해 강남권 개발은 급속도로 진행이 되었다. 개발열풍에 휩싸인 1980년대 강남은 땅값이 급등하였고 부동산투기와 복부인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그 뿐만 아니라 상업시설도 눈에 띄게 발전하였다. 고급식당, 룸살롱, 호텔 등 유흥시설 및 강북에서 넘어온 명문학교 이른바 '강남 8학군'이 유명세를 떨치고 이를 둘러싼 아파트들이 가격이 높게 올라갔고 학원가 등 사교육 열풍이 대단했다. 

 

1980년대 현대식 아파트와 소가 밭을 가는 대비적인 압구정동의 모습, -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 
1980년대 현대식 아파트와 소가 밭을 가는 대비적인 압구정동의 모습, -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 

 

  그 당시 강남지역 주거형태를 살펴보면 총 13만7335호 중 전체 70%가 넘는 9만9830호가 아파트였다. 1975년~1979년까지 강남구에 건설된 아파트는 17,108가구이며, 특히 압구정동에 4,761가구, 대치동에 6148가구가 건설되었다. 1981년부터 1985년 사이에도 압구정동, 대치동, 개포동 등지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비롯하여 약 4만가구가 건설되었다. 1985년 서울 전체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26.5%였으나 강남지역은 72.7%나 되어 아파트 도시로서의 강남의 이미지를 더욱더 확고히 했다는 평가다.

 

강남구와 서초구는 원래 같은 '구(區)' 였다

  이렇게 강남주택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후,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75년 강남구 신설 당시 32만 명이었던 인구는 1987년 82만 명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으며, 강남은 강북의 팽창을 해소하기 위해 강남개발에 모든 힘을 실었지만, 결론적으로 강북보다 더 비대해진 것이다. 그리하여 1988년에 강남은 강남구와 서초구로 분할하게 되었다. 지금의 반포동과 압구정동이 원래 같은 구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강남3구'라고 통칭하는 강남, 서초를 구분지어 나누는 것에 있어 큰 의미가 없다고 느낄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이기도 하다. 

  

1980년대 마지막 강남개발사업부터 

2024년 서초구 헌인마을 개발사업

  1960년대 말 부터 시작되어 1980년대 초에 대규모 개발방식에 의한 택지개발이 개포지구로 거의 마무리가 된다. 개포지구는 현재 강남구 개포동, 일원동 일대, 서초구 도곡동, 우면동 등 일대, 경기도 과천 주암동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를 조성하는 계획이었고 여기에는 현재의 LH(한국토지주택공사) 의 전신인 토지개발공사, 주택공사 및 서울시가 참여했다. 개포지구가 1988년 12월에 완성함으로써 강남지역의 대규모 개발방식의 사업은 마무리가 되었다. 

개포지구 도시설계, 1985년, - 출처 서울시종합자료관 -
개포지구 도시설계, 1985년, - 출처 서울시종합자료관 -

  현재 서초구, 강남구는 재건축으로 인해 반포 원베일리, 개포 자이프레지던스, 개포 디에이치자이 등과 같은 신축아파트의 인기로 인해 중개업소에서는 매물이 없어 공동중개(다른 부동산과 협업하여 중개를 하는 방법)를 해서라도 수요자에게 공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로 인해 초반 분양가대비 시세도 많이 오르기도 하였다. 강남지역의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72%로 주택이 대부분의 가구수가 아파트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뜻은 앞으로 아파트로 개발할 수 있는 강남구, 서초구 땅은 재건축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실제로도 현재 강남구에서 시행하는 사업은 재개발 사업이 없고 재건축 사업만 있다. 

분구되기 전에 강남구였던 땅, 서초구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  
분구되기 전에 강남구였던 땅, 서초구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  

  80년대 개포지구의 대규모 개발을 마지막으로 최근 분양을 시작한 서초구의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이 그 이후 강남에 마지막 남은 대형 건설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다. 총 면적 5만6천 평의 거대한 땅에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을 함께 건설한다. 단지 면적이 총 61,109.20㎡(1만8485.58평)으로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거대한 프로젝트임을 알 수 있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 374번지 일대에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을 통해 공급된다. 총 222세대 지하2~3층, 지상 3층 규모로 롯데건설이 시공한다. 롯데건설의 하이엔드브랜드 '르엘'과 신원종합개발 하이엔드 브랜드인 '어퍼하우스'를 합쳐 '르엘어퍼하우스'라고 부른다. 녹지율이 1.3%로 비교적 낮은 강남구, 서초구에서 숲 속의 프라이빗 럭셔리 주거공간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사전청약 이후 본계약 전환을 진행하고 있으며, 높은 본계약 전환율을 보이고 있다. 3월 중순부터 일반 분양을 시작하였는데, 시작하자마자 하이엔드 주거상품 시장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아 벌써 4월까지 예약이 밀려있을 정도이다. 개포, 대치, 도곡, 세곡동에서 하이엔드 아파트로서 입지를 다질 예정이다. 

 

강남 한강변 마지막 남은 과제, 압구정 재건축 

압구정동 미성아파트와 신현대아파트 사이길에 연결된 신사 한강공원의 모습
압구정동 미성아파트와 신현대아파트 사이길에 연결된 신사 한강공원의 모습

  어느 하이엔드 아파트 분양 모델하우스에서 기자가 만난 한 아파트 실수요자는 100억 원대의 높은 분양가인 하이엔드 신축 아파트를 분양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기자에게 차라리 강남의 상급지인 압구정 재건축을 투자를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라는 질문을 했다. 압구정동은 3호선 압구정역, 수인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을 감싸는 초 역세권에, 전국 탑급의 학업성취도를 자랑하는 압구정중학교, 신사중학교 및 높은 서울대 입학률을 자랑하는 현대고등학교, 압구정고등학교가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갤러리아백화점, 현대백화점이 도보권이며 서울시 한강르네상스 사업에 따르면 압구정3구역과 서울숲을 잇는 보행교를 건립할 예정이다. 교통, 학군, 환경 및 입지요소를 다 갖춘 서울의 중심지이다.

  압구정 재건축 2구역인, 압구정 신현대아파트의 모습이다.
  압구정 재건축 2구역인, 압구정 신현대아파트의 모습이다.

  현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압구정 재건축 사업은 압구정 1~6구역으로 나뉘어 작년 7월 2~5구역이 신속통합기획으로 확정되어 진행 중이다. 조합설립인가가 끝난 2~5구역은 구역별로 재건축이 추진되며 50층 이상으로 약 1만 1800세대가 들어설 예정이다. 그러나 기부채납 및 분담금으로 인한 분쟁으로 잡음이 많다. 현재 가장 빠른 진행속도를 보이고 있는 압구정 3구역의 경우 추정분담금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금액으로 인해 조합원 분담금이 늘어나 조합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또한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는대신 임대아파트를 건설하는 기부채납에 대한 갈등도 점점 깊어지고 있다. 결국 조합원이 많은 만큼 많은 이해관계로 얽힌 사업 속도가 느린 재건축 사업에 투자를 할 것이냐 비교적 속도가 빠른 신축 아파트로 갈 것이냐의 고민인 것이다. 이곳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인 만큼 갭투자가 불가하며 낡은 아파트에서 실거주가 필요하다. 흔히 요즘 말하는 '몸테크(직접 실거주를 하는 것)'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음 달 압구정동을 비롯한 목동, 성수동, 여의도동은 26일 토지거래허가구역지정 만료 기한이 도래한다. 한 번 지정되면 매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전체 회의를 통해 재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이처럼 압구정동의 멋진 청사진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은 매수하기 전 한 번쯤 현재 자신의 나이와, 재건축이 완료되는 시점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합원들의 의견과 서울시의 양보 없는 첨예한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공사비, 분담금 갈등으로 인해 사업진행 속도가 느려지면 느린 만큼 웃프게도 내가 신축아파트에 사는 시간은 짧아지며, 자녀나 혹은 손자에게 넘기는 방향으로 진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 참고문헌

   강홍빈, 『강남40년 영동에서 강남으로』, 2011, 서울역사박물관전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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