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손현 씨의 모습(오른쪽)
현재 손현 씨의 모습(오른쪽)

“We can do this all day because we’re frogman”

“제가 항상 힘들 때마다 떠올리는 말입니다”

미국 해군의 엘리트 특수부대 네이비실의 어록 중 이런 말이 있다. “우리는 UDT이기 때문에 이 일을 매일 할 수 있다” 즉, 혹독하고 매우 힘든 훈련들이지만 우리는 UDT 특수부대원이기 때문에 매일 해낼 수 있다. 라는 의미다.

“뭐든 쉬운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한다면 한다, 끝까지 해낸다. 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모든 일에 임했습니다.”

 

취미로 시작한 복싱, ‘프로복서’라는 꿈을 가지게 되다.

 

손현 씨는 중고등학교 때 성실한 학창 생활을 보낸 그저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는 운동을 가장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 축구와 권투를 좋아했다. 평소 사교성이 좋아 새로운 친구들과도 곧 잘 어울려 놀았고 친구들 중 셋이서 친목 다짐에서 취미로 함께 복싱 체육관을 다녔었다. 그가 복싱에 대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건 처음 시합을 참가한 날이었다.

“시합을 할 때 남자 대 남자로 싸운다는 점이 재밌었습니다. 그런 점이 복싱의 매력이라고 느껴졌고 그날 이후 복싱에 흥미가 커졌습니다”

복싱에 흥미를 느낀 그는 체육관에 열심히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관장은 그에게 “경기를 한 번 나가봐라”고 권유했다. 그는 재미 삼아 친구들과 시합에 나갔다. 결과는 꼴찌였다. 상대에게 맞고 패한 그는 오기가 생겼다.

“더 열심히 해서 이기고 싶다”

도전하고 싶었고, 경기는 재미도 있었다. 그는 기회가 있으면 시합에 계속 참가했다. 복싱은 그의 로망이 되었다. SNS에서 복싱 관련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동경하는 복싱선수도 생겼다. “저는 ‘바실 로마 첸코’라는 선수의 시합 영상을 보고 매력을 느꼈습니다. 이 선수의 스타일이 화려해서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 선수를 따라하고 싶었고, 그렇게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영상 속 선수들의 기술을 실제로 활용해보고 싶었다. 그는 선수 생활 후에는 지도자의 삶을 살고 싶을 만큼 복싱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프로복서의 꿈을 키웠고, 계속 노력하면 꿈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살아갔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이 찾아오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그는 위기를 겪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셨을 때 집이 정말 가난해졌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상황이 안좋아 원래 지내던 곳보다 좁은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집이 어려워진 후 그는 집에 들어가지 않은 적이 많았다. 일부러 체육관에서 잠을 자기도 했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도 했다. 방황의 시작이었다. 체육관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그만 다니게 되었다. 그는 현실도피를 하고 싶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진짜 죽고 싶을 것 같습니다.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평소처럼 친구들과 똑같이 일상을 보내다가도 집에 가면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점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방황을 해서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이렇게 방황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겠다" 

그는 고3 때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수능이 눈앞으로 다가왔을 때 머리에 당장 든 건 없고 진짜 공부해야겠다, 졸업해서 빨리 돈 벌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복싱을 했기 때문에 체육 학과로 진학할까 생각했지만 졸업 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자신의 꿈보다는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대학을 선택했다.

 

새로운 꿈과의 만남

 

그의 아버지는 해병대 출신이다. 평소 아버지에게 “아빠가 ‘해병대 정신’이라는 게 있어. 나는 해병대에서 포기하지 않는 습관을 배웠다. 너도 꼭 해병대를 가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 그 영향이었을까, 그는 대학을 다니다 해병대에 입대했고 훈련과정에서 군인의 매력과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다.

“훈련 나가기 전에 장비들을 운동장 같은 곳에 깔아놓고 준비가 다 되었는지 점검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 때 많은 병사들과 사단장이 있었는데 그 현장의 분위기와 깔려있었던 무기들이 저에게 멋있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당시 느꼈던 분위기, 그리고 다양한 장비들을 한 곳에 깔아놓은 것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군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

“해병대의 빨간 명찰을 가장 달고 싶었어요. 빨간 명찰은 해병대의 상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행군을 하고 빨간 명찰을 다는 수여식은 저에게 의미 있는 날이었습니다. 달고 나서 너희들은 이제 해병대가 되었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진짜 해병대가 되었다는 생각에 짜릿했습니다. 그 후 저는 자랑스러운 군인의 삶을 살고 싶어졌습니다” 

군생활을 하면서 그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아직까지 만나고 연락하는 선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군생활이 더 즐거웠고, 많은 배움도 있었습니다”

그에게 해병대에서 많은 가르침을 준 선임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고 계획한 것은 끝까지 해냈다. 선임의 추진력 있는 모습은 그에게 본받고 싶은 모습이자 멋있는 군인의 자세였다.

 

해병대에서 UDT 특수부대원으로, 또 한번의 변화

 

UDT는 해군 특수전전단이다. 상륙 작전에 앞서 적 해안에 침투해 기뢰 등 수중 장애물과 해안포, 레이더 등을 제거하고 상륙부대에 각종 해안 정보를 제공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UDT의 훈련은 임무 성격상 초인적인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매우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12주간의 기초체력 훈련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지원자의 40% 미만일 정도다. 그는 이런 UDT를 꿈꾸게 된다.

그는 해병대에서 UDT를 처음 접했다. 종종 UDT 특수부대원들은 해병대 쪽으로 훈련을 왔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들이 멋있게 느껴졌다.

“하루는 UDT 특수부대원들이 치킨을 먹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냥 진짜 별거 아닌 모습인데 그것마저 멋지게 보였습니다”

훈련을 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그는 그들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다 멋있었다. 그는 UDT에 대한 매력을 새롭게 느끼고 나서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보게 되었다. 경쟁률은 9대 1로 매우 높았다. 하지만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면접관들이 긴 답변을 별로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솔직하고 짧은 대답을 준비했다.

“저에게 왜 UDT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하셨었어요. 그냥 UDT가 멋있어서. 내가 해병대에서 봤던 UDT 특수부대원들처럼 되고 싶어서 라고 대답했습니다”

12월에서 1월 사이에 있는 시험도 있었다. 시험을 위해서는 얼음장 같은 수영장에 맨몸으로 들어가야 했다. 평형 200m, 자유형 200m를 5분안에 들어와야 했고, 입영으로 3분을 버텨야 했다. 하지만 시기상 추운 날씨로 인해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에게도 나가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UDT가 진심으로 되고 싶었던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자유형을 할 때 너무 숨이 찼고, 태어나서 처음 겪어본 수온이었습니다. 너무 차가워서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했던 이유는 이대로 나가면 창피할 것 같았습니다. 주변에 UDT 갈 거라고 엄청 소문도 많이 내고 다녔는데 제가 내뱉은 말은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더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다면 한다. 포기는 없다.

 

그는 혹독한 훈련에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열정을 가졌다. UDT의 대표적인 훈련과정으로 '지옥주'가 있다. ‘지옥주’란 5일 동안 잠을 잘 수 없으며 밤에는 노를 젓고, 낮에는 오리걸음으로 산을 타고, 밥 먹을 때 외에는 화장실도 못 가는 훈련이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훈련이 끝나면 다들 소금기에 절여진 옷과 신발에 살이 쓸린 상태였고, 여기저기 다치고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습니다.”

쉽지 않았던 훈련을 끝까지 해낸 그의 극복 비결은 ‘불가능은 없다’라는 마음가짐이었다.

“원래부터 포기를 쉽게 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해병대에서 끈기가 좋았던 선임과 포기를 모르시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이런 혹독한 훈련이 있을 때마다 끝까지 버텼던 것 같습니다”

훈련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초임이라 배울 것이 많고, 교육 훈련을 많이 받고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모든 훈련들을 이겨낼 만큼 그는 UDT 특수부대원의 삶을 사랑한다.

“집이 어려워지고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꿈을 찾은 덕분에 UDT 특수부대원이 되었고, 저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합니다”

그는 원래 꿈꿨던 길이 있었지만 위기가 있었고,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도전하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이자 자랑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는 포기하려고 하고 낙담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끊임없이 도전해보라고, 하면 어떻게든 된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습니다. UDT 교육생들 중 ‘돌아온 UDT’, 줄여서 ‘돌유’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6개월간의 혹독한 훈련을 하다 버티지 못하고 퇴교했지만 다시 도전하기 위해 그 과정을 알고 있음에도 돌아온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분들처럼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마음을 다들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예빈 기자

kyb0110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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