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혹은 스크린 속에서 연기와 목소리만으로 관객들을 압도하는 힘을 가진 이들이 있다. 바로 ‘배우’이다. 때로는 호소력 짙은 연기로 관객을 눈물짓게 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연기로 웃음 짓게 한다.

11월 20일, 동아방송예술대학교 공연예술계열에 재학 중인 배우 황윤채 씨를 만났다. 그녀는 작년, 배우로서 청주씨어터J소극장에서 데뷔를 마쳤고 현재는 교내에서 다양한 공연들로 관객들을 만나며 다채로운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배우 황윤채 씨는 어렸을 때부터 워낙 활발했고, 누군가를 이끌어가고 돕는 것을 좋아하는 외향적 성격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받아왔다. 그리고 빠짐없이 반장, 혹은 학생회장을 맡으며 많은 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왔고, 그 과정에서 세상을 좀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되었다.

‘까불이’라고 불릴 정도로 활발한 성격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고등학생 때, 자신의 성격과 끼를 펼칠 수 있는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연극 동아리를 하면서 매 순간 무대에 서는 일이 설레고 누군가에게 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즐거웠어요. 그렇게 무대를 향한 제 진심을 깨달은 후 이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고, 다짐한 순간부터 연기에 대한 열정이 더욱 커지더라고요. 그 열정이 지금의 저를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작은 거인’ 황윤채

자신이 택한 길에 있어 늘 자신감이 넘쳤던 그녀에게도 좌절의 순간이 찾아왔다. 입시 준비 당시, 많은 이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본인은 다른 이들에 비해 키도 작고, 덩치도 왜소하고 모든 부분에서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반복되는 고민 속에 자존감은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배우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상품화될 수밖에 없고, 경쟁의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하잖아요. 그 길을 준비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작아 보였고, 그 과정에서 하염없이 제 탓만 하며 무작정 스스로를 깎아내리기만 했던 것 같아요. 한 번은 속상한 마음에 엄마품에 안겨서 울다가 나는 왜 이렇게 작게 태어났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우스갯소리로 자신이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느 날, 입시 학원 계단에서 혼자 울고 있는 그녀에게 한 친구가 다가와 그녀를 ‘작은 거인’이라고 불러 주었다. 달래주기 위한 큰 의미 없는 말이었겠지만 그녀에게는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작은 거인’이라는 표현이 자신에게 제격이라고 생각하며,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거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파워풀한 성량으로 노래하는 자신을 그제서야 비로소 마주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단점을 찾는 데 시간을 소비하기보다 자신 본연의 모습을 사랑하고, 조그마한 것이라도 매력으로 만들어 세상에서 단 한 명뿐인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다짐과 노력을 하며 좌절을 극복할 수 있었다.

”지금도 좌절의 순간이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결국 극복해낼 것이기에 그러한 경험들을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웃음)“

 

스무 살, 연극 ‘겟팅 아웃(Getting Out)’으로 데뷔

연극 ‘겟팅 아웃’은 마샤 노먼의 첫 희곡 작품을 각색한 것으로,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작품에서 알리 역을 맡았다. 극 중 알리는 매춘부였기에 처음에는 해당 배역을 표현하기에 조심스러웠고, 섣불리 도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그녀의 연기를 지켜본 연출가는 그녀가 그 역할을 잘 소화해낼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연기할까 고민하던 중 연출가님께서 ‘너는 이제 성인이 되었고, 프로 전공자로서 해내야 할 작품이다. 내가 너에게 연기 지도를 하는 것보다 네가 이 인물을 이해하려 하고, 그 인물에 너의 성향을 섞어 역할을 해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녀는 작품을 준비하면서 심리적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극중 알리는 과거 아빠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이다. 그렇기에 경험하지 않은 것을 상상만으로 해내야 했고, 무대 위에서는 실제로 피해를 입은 알리에 이입해야 했기에 정신적인 면에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이 그 배역에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도록 인물 분석과 이입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기에, 결국 배우 ‘황윤채’로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녀를 아는 많은 이들이 공연장에 찾아와주었고, 데뷔를 축하해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데뷔에 대해 몇 마디 덧붙였다.

“감사한 기회로 좋은 작품을 만났고,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에 제가 가는 길에 있어 첫 단추를 잘 꿰멨던 것 같아요. 그 덕분에 매순간 거만해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공연에 임하고 있어요.“

 

코로나19로 텅 빈 공연장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행으로 이전과는 다르게 많은 공연들이 관객 없이 배우들만이 공연장을 채운다. 그렇기에 현장에는 배우들과 스텝들만 있고, 관객은 화면 너머 온라인으로 공연을 관람한다. 그녀도 무관객으로 공연을 한 경험이 있다. 그녀 역시 항상 무대를 채워줬던 힘찬 박수와 호응이 없어 텅 빈 공연장 속에 공허함을 많이 느낀다. 그녀는 이 마음을 ‘땅은 있는데 하늘이 없어진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뿐이었고 아쉽다는 마음보다 공연 준비를 하는 과정에 있어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그저 공연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전했다.

“무관객 공연은 제게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준 것 같아요. 연기로 표현되는 여러 감정이 관객들에게 직접 닿지 않고, 화면 너머로 전해진다는 점이 물론 아쉽기도 했지만, 이는 오히려 제가 성장하는 데 있어 발 디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관객이 없다고 공연과 무대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매 무대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오직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비록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제 연기와 목소리가 많은 이들에게 진심으로 닿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어요.”

 

가능성이 ‘무한한’ 배우

그녀는 어떠한 배역을 맡으면 가장 먼저 주변에 그녀가 맡은 배역과 비슷한 삶을 살아왔거나 성향이 비슷한 인물이 있는지 찾아보고, 있다면 하루 종일 지켜보며 그 인물을 통해 분석한다. 또한, 영화를 통해 비슷한 인물을 분석하고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을 접하기도 하고 ‘만약 내가 그 인물이라면’ 등 자기 자신을 직접 대입해서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어간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테크닉적으로 연기를 하는 것보다는 마음을 움직이는 연기를 하는 것이기에, 인물을 표현하는 데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이처럼 꾸준히 노력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연기를 하는 배우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 언제인가에 대한 질문에 그녀는 공연 후, 자신이 의도한 대로 관객들이 그 연기를 받아들였다고 느꼈을 때 가장 뿌듯하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무대와 관객들에 대한 그녀의 진심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 무대를 준비할 때 그 과정을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한 걸음 나아가 다음 과정을 준비하는 무한 도전의 배우가 되고 싶어요. 또, 항상 거만해하지 않고 매 무대에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는 진정성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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