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기업에서도 한 조직의 수장을 교체하는 것은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이다. 제대로 된 사장이 선임되지 않아 임시 대표에 이어 임시 대표 사임으로 또 다른 임시 대표를 선정한다면 어떨까? 스포츠에서 감독 대행은 감독이 부재중인 상황에 그 역할을 대신하기 위한 임시 직함이다. 2020시즌 한국 프로축구 K리그1 FC서울은 연속된 감독 대행 선임으로 감독의 공석이 돋보인 한 해를 보냈다.

2018시즌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상황에 처한 FC서울은 전임 감독이었던 최용수 감독이 재부임 하면서 극적으로 잔류했다. 지난해에는 3위에 안착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며 명가 부활을 꿈꿨다. 하지만 이번 시즌 초 부진으로 강등권인 11위에 머물렀고 FA컵 8강전 포항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1-5의 스코어로 대패해 탈락했다.

이에 최용수 감독은 지난 7월 30일 3승 1무 9패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으로 사임했다. 서울은 마지막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린 2016년 이후 신임 감독 선임과 부진 그리고 자진 사퇴라는 비슷한 길을 매년 걷고 있다.

최용수 감독의 사퇴로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된 FC서울은 김호영 수석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정식 임명했다. 김호영 대행은 팀을 지휘하면서 4승 3무 2패를 기록해 중위권인 7위까지 끌어올렸고 지도력을 충분히 인정받았다.

여기서 FC서울은 김호영 감독 대행을 정식 감독으로 선임했어야 했다. 파이널A 진출에 실패하면서 한 단계 발전한 결과를 내지는 못했으나 강등권에 있던 팀을 안정권으로 끌어올려 최 전 감독에 비해 더 좋은 경기력을 펼쳐왔다. ‘대행’이라는 건 임시적인 역할이다. 임시적인 역할인 만큼 팀 내부에서 김 대행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가 존재했다.

감독과 감독대행의 차이는 크다. 김봉길 인천유나이티드 전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감독대행은 선수들을 지도할 때도 정식 감독처럼 의견을 내기가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감독대행 시절에는 ‘대행’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오히려 내가 선수들에게 적극적으로 뭔가를 주문하는 게 눈치가 보였다. 경기장에 나갈 때 양복을 입는 것도 주위의 시선을 의식했다. 양복을 입으면 ‘자기가 감독인 줄 안다’라는 말을 들을까봐 일부러 더 트레이닝복을 고수했다”고 말할 정도로 감독과 감독대행은 선수들을 대하는 자세에도 큰 차이가 생긴다.

감독대행 스스로가 감독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잘 알고, ‘대행’이라는 꼬리표는 짐처럼 따라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지도력이 인정된다면 감독으로 승격할 필요가 있다. 그런 김호영 감독 대행은 시즌 초보다 나은 성적을 냈기에 정식 감독 승격을 원했지만 서울 구단은 촉박하다며 선임을 거절했다. 불분명한 입지에 김 대행은 더 이상의 지도 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스플릿 라운드 이틀 전 팀을 떠났다. 예상치 못한 이탈에 FC서울은 김호영 감독 대행의 대행으로 박혁순 코치를 선임하며 불안정한 시즌 마무리를 예고했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감독이 P급 지도자 자격증을 필수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박혁순 감독 대행은 P급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지 않아 FC서울은 새로운 감독을 내정해야 했다. 11월 말 카타르서 열리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재개 직전까지 많은 감독 루머가 나왔지만 결국 서울은 오산고등학교 축구부의 이원준 스카우터를 감독 대행으로 내세웠다. 한국 프로축구에서는 거의 처음 있는 사례다.

FC서울은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어렵게 따냈음에도 감독의 공석을 메우지 못해 스카우터를 감독 대행으로 세웠다. 스포츠에서는 어떤 상황이든 있을 수 있지만 이런 경우는 팀에 좋은 것이 없다. 하나가 되어 움직여야 하는 축구에서 팀을 이끌어 나갈 분명한 지도자가 없는 것은 팀을 흔들리게 할 충분한 요건이 된다. 정식 감독 선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서울은 리그 9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 탈락이라는 좋지않은 결과와 함께 시즌을 마무리했다.

FC서울은 최근 팀의 분위기 반전을 위해 박진섭 전 광주FC 감독을 정식 선임했다. 하지만 기존의 구단 운영 방식을 유지한다면 매 시즌 똑같은 과정과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감독의 역할이 더욱 중시되는 현대 축구에서 감독의 대행의 대행의 대행을 선임하는 것은 구단 운영 의지에 어울리지 않는 행위였다. FC서울은 과거와 현재 K리그의 흥행을 이끄는 명가인 만큼 제대로 된 투자 그리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구단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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