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위헌성을 인정했다. 그에 따라 국회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낙태죄’ 개정 시한이 12월 말로 다가온 시점에서 정부는 낙태죄의 완전 폐지가 아니라 존치를 선택했다.

정부는 개정안에 처벌 조항을 그대로 유지하고 위법성 조각 사유를 추가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여성의 임신 중지 결정권을 14주까지만 보장하고 24주까지는 기존의 처벌 예외 조항에 ‘사회·경제적 이유’를 추가한 것이다. 임신 14주까지 여성은 몸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14주가 지나고 24주 내에서는 명백한 사유가 없다면 임신 중지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회경제적 이유로 임신 중지를 할 경우 상담을 의무적으로 받고 24시간 숙고기간도 가져야 한다. 그 외에도 정부안에는 의사의 개인적 신념에 따른 인공임신중지 진료 거부를 인정하는 의사의 진료 거부권도 포함되어 있다.

결국은 낙태 허용 권한을 국가가 갖겠다는 것이다. 처벌 조항의 존치는 기본적으로 임신 중지는 죄고 예외적인 상황들만 봐준다는 이야기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정부 개정안대로라면 임신 중지를 선택한 여성은 여전히 죄인이다.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한다는 목적의 ‘낙태죄’는 그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는다는 점이 모순적이다. 여성 혼자 임신을 하는 것도 아닌데 처벌 대상은 임신 중지을 결정한 여성과 의사뿐이다. ‘낙태죄’가 주장하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에 있어 남성의 책임은 없다.

여성은 국가도 남성도 책임지지 않는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 낙태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낙인과 부정적인 시선 또한 남성에겐 향하지 않는다. 국가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낙태죄’를 고수하고자 한다면 책임감 없는 남성도 동일 처벌해야 한다. 국가의 태도는 마치 ‘낙태’를 처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를 하는 여성’을 처벌하고자 하는 것 같다.

낙태죄 합헌론자들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가볍게 취급하지만, 임신 중지는 여성에겐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임신은 여성의 몸에, 여성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여성의 거의 모든 권리를 제한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국가는 임신한 여성의 건강 상태와 그가 처해있는 사회적 환경, 출산 후의 사후대책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한다는 국가는 여성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60년대 중반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펼치며 농촌을 중심으로 무료로 임신 중지 수술을 해주는 ‘낙태 버스’를 운영했다.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국가는 인구정책에 따라 제멋대로 낙태를 허용하기도 금지하기도 했다. 이는 국가가 여성의 몸을 필요에 따라 통제해왔음을 보여준다. 낙태죄 개정 시한을 한 달 앞두고 처벌 조항의 존치를 결정한 국가는 ‘낙태 버스’를 운영하던 시절과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국가에게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 태아의 생명을 논하기 이전에 여성을 생명이 아닌 수단으로 보고 있진 않은가. 여성의 몸은 출산의 의무를 지니고 있지 않고, 국가의 소유가 아니다.

저작권자 © 한국도시환경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