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시각장애인 관련 국가문화재 지정 사례

훈맹정음 사용법을 기록한 한글점자 원고/문화재청 제공
훈맹정음 사용법을 기록한 한글점자 원고/문화재청 제공

지난 4일 문화재청이 ‘한글점자 훈맹정음 제작 및 보급 유물’과 ‘한글점자 훈맹정음 점자표 및 해설 원고’를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했다. 국내에서 시각장애인 관련 문화유산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훈맹정음’은 송암 박두성(朴斗星) 선생(1888~1963)이 1926년 11월 4일 반포한 우리나라 최초의 6점식 점자로, 시각장애인들도 한글과 같은 원리로 글자를 익힐 수 있도록 개발한 고유 문자 체계다. 문화재청은 “훈맹정음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시각장애인을 위한 고유언어라는 점에서 문화적 가치가 크고, 당시의 사회상 및 근대 시각장애인사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써 문화재 등록 가치가 높다”며 등록 사유를 밝혔다.

국가등록문화재 제800-1호로 등록된 ‘한글점자 훈맹정음 제작 및 보급 유물’에는 훈맹정음 사용법에 대한 원고, 제작과정 일지, 제판기, 점자 인쇄기(롤러), 점자타자기 등 한글점자의 제작 및 보급을 위한 기록 및 기구 총 8건, 48점이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800-2호로 지정된 ‘한글점자 훈맹정음 점자표 및 해설 원고’에는 한글점자 육필 원고본, ‘한글점자의 유래’ 초고본 등 한글점자의 유래, 작성원리, 그 구조와 체계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유물 총 7건, 14점이 있다. 훈맹정음의 창안부터 실제로 사용될 때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어 당시 시각장애인들이 한글을 익혔던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현재 유물은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송암박두성기념관에 전시돼 있으며, 인천시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가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앞서 인천시와 미추홀구는 훈맹정음 관련 유물의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을 위해 현장 조사를 진행했고, 인천시 문화재위원회 사전신청 결의를 추진해 올 7월에 문화재청에 등록을 신청했다.

이번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으로 인천시는 유물의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를 위한 국비 지원을 받게 됐다. 시는 세계의 문자 문화 역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송도에 2022년 개관 예정인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 ‘훈맹정음 상설 전시관’을 마련해 해당 유물들을 전시할 계획이다.

송암 박두성 선생
송암 박두성 선생

창시자 박두성 선생은 인천 강화군 교동도 출생으로, 1913년부터 국립맹아학교의 전신인 제생원에서 맹아부 교사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 교육에 매진했다. 당시 일어 점자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불만을 가졌던 그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1920년부터 한글점자를 연구했고, 1926년 훈맹정음을 완성했다.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그는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외된 맹인들을 위한 교육에 전념하면서 한글점자 창제라는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는 등 평생을 장애인 교육에 이바지했다. 그가 출판한 점역 도서는 최소 70종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한글의 시초는 훈민정음이며 세종대왕이 만들어 반포했다는 것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한글인 ‘한글점자’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누가 만들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이번 훈맹정음 관련 유물의 문화재 등록과 박물관 전시를 위한 인천시의 노력은 국민에게 ‘훈맹정음’과 시각장애인에게 큰 등불이 되어준 박두성 선생의 존재를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 앞으로도 시와 국가가 협력하여 박두성 선생의 정신을 기리며 훈맹정음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길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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