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왼손 피아니스트 ‘이훈’씨를 만났다. “10%도 안 되는 가능성에서 살아난 것만큼 큰 기적은 없다, 나는 늘 행복하다. 그런 마음을 전하고자 피아노를 연주한다” 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해맑게 웃으며 그는 말했다. 피아니스트 이훈은 왼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다. 페달도 왼발로만 밟는다.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이던 그에게 8년 전 불의의 뇌졸증이 찾아와서다. 좌뇌 일부를 들어내는 대수술로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되고 언어장애까지 앓게 됐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피아니스트에게 치명적인 장애에도 오히려 전보다 깊어진 선율로 관객의 가슴을 두드리는 중이다. 

‘전조없이 들어닥친 뇌졸중’

초등학교 2학년 당시 학교 앞 교습소에서 흘러나오던 피아노 소리에 매료된 이훈은 촉망받는 젊은 연주자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리스의 뮤즈 국제 음악 콩쿠르 등에서 입상하고 독일·네덜란드를 주로 오가며 공연을 펼쳤다. 하지만 2008년 독일 유학을 끝내고 향한 미국 신시내티 대학에서 그는 박사과정을 밟던 2012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다행이도 당시 세를 준 할머니가 그날따라 늦게 잠든 덕분에 쓰러진 이훈을 발견할 수 있었고 세계적인 뇌수술 전문의는 일정을 취소하고 그의 수술을 집도했다. 신시내티 음대 교수와 함께 유학하던 동료 피아니스트들까지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생환은 어려웠다. 혼수상태에서 간신히 깨어났지만 후유증으로 왼쪽 뇌의 60%가 손상되어 오른쪽 팔, 다리가 마비되고 언어장애 까지 갖게 되었다. 피아니스트에게 오른쪽 팔다리를 쓰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절망적이 상황에서 피아노를 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스승인 전영혜 경희대 명예교수 겸 피아니스트는 눈을 뜬 이훈에게 “오른손을 위한 곡은 없어도 왼손 연주자용 악보는 많다. 하나님이 너를 특별하게 쓰시려고 하는 거다”며 독려했다. 이훈은 생의 끝에서 피아노로 다시 희망을 찾았다. 2016년 4년 간의 긴 재활을 이겨내고 서울 가톨릭 성모병원에서 연 첫 독주회는 미국에서 7번의 연주회를 가지면 박사 학위를 주겠다는 신시내티의 특별한 제안으로 이어졌다. 성모병원 담당의조차 이례적인 재활 속도를 연주의 힘으로 진단한다는 이훈은 “무엇보다 성격이 낙관적으로 변했다. 콩쿠르를 앞두고 한숨도 못 자고 불안해하던 이훈은 이제 없다”며 웃어 보였다.

‘특별한 콘서트를 연주하다’

오는 26일 오전 11시 롯데콘서트홀 유튜브 채널에 올라가는 무관중 리사이틀 ‘My Left Hand(나의 왼손)’는 피아니스트 이훈의 특별함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롯데문화재단과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진행된 지난 4일 공연 녹화 당시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이훈은 무대 중앙에 놓인 피아노까지 천천히 걸어 나온 후 열정적인 연주를 펼쳤다. 지난해 독주회 때 보조자에 의지해 무대에 입장했던 이훈은 “혼자 힘으로 처음 입장한 감격스러운 무대였다”며 “연주도 만족스러웠다. 관객이 이번 공연에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날 프로그램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스크랴빈의 ‘전주곡과 녹턴 Op.9’, 전욱용의 ‘왼손을 위한 판타지’, 고도프스키의 ‘명상’, 바흐-브람스의 ‘샤콘느 BWV.1004’ 등으로 구성됐다. 작품마다 동양화인 듯 여백의 미가 묻어났다.

화려함으로 치장한 연주에는 없는 이 배려의 공간에서 관객은 음악에 빠져든다. 8월 타계한 전설의 ‘왼손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와 비교하면 “한없이 작은 수준”이라며 손사래를 친 그이지만, 연습만큼은 누구보다도 치열하다.

이훈은 “양손이면 빨리 익혔을 곡들도 반년이 걸릴 때가 있다. 어려운 곡은 1년이 걸려도 못 친다”며 “아침 먹고 다시 저녁 먹을 때까지 피아노를 친다. 선보인 레퍼토리 모두 극복의 마음으로 만들어온 소중한 곡들”이라고 전했다. 체력관리 겸 재활을 위해 매일 아침 산책도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이훈에게 행복을 묻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이훈은 “두 팔이 멀쩡하고 언제든 원하는 레퍼토리를 너끈히 소화해내던 시절보다, 뇌졸중 후 기사회생의 인생을 사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말했다” 말이 될까 싶지만 그게 솔직한 마음이다 라며 재차 강조하였다. 

“뇌수술 전문의 외에 현장에 있던 모든 의사들이 생존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판정했습니다. 결국 사망 90%와 생존 10%의 확률 사이에서 살아났거든요. 이보다 더한 행운이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때문에 뇌졸중 이전의 성격도 다 버렸습니다. 까탈스럽고 밑도 끝도 없는 근심, 예민하고 조급해하는 마음 등 늘 걱정을 달고 살았거든요. 지금은 모든 욕심을 비워버렸습니다.

피아노 연습에 열정은 예전만큼 뜨겁지만, 손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뇌졸중은 저에게 새로운 인성을 심어주었습니다.” 뇌졸중의 원인은 스트레스와 깊은 관련이 있을 텐데, 혹시 박사 논문 준비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논문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훈은 독일 함부르크국립음대를 나와 뤼벡 국립음대에서 AKA디플롬과정을 졸업하고 반주자 과정까지 수료했다. 피아노에 대한 욕구를 쫓아 네덜란드 Utrecht 국립예술대학을 졸업한 뒤 다시 돌아와 함부르크 콘서바토리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가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시절이 바로 이 ‘독일 유학시절’이었다. 피아노 연주에 대해 원하는 만큼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아 늘 조급했다. 어쨌든 ‘성취와 상실’의 시소를 타면서 무사히 독일 시절을 마쳤다. 그러나 거기서 길이 끝난 게 아니었다. 그는 새로이 미국으로의 길을 개척했다.

“2008년에 미국 신시내티 음대에서 박사학위를 목표로 도전했는데 독일보다 훨씬 스트레스가 적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정말 행복했거든요. 4년 동안 공부하면서 특별히 피아노 연주 문제로 고민하지도 않았고요.

논문도 한국과 일본에서 충분히 자료를 찾은 상태였기에 뇌졸중을 일으킬 만한 스트레스가 있을 리 없거든요. 당시 규칙적으로 수영도 했습니다. 이상하죠?” 정말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앞으로 도전해야 할 왼손 작품들, 정신 못차릴 만큼 많아 행복’

이훈은 마치 반드시 치러야 할 의식, 리추얼처럼 오전 내내 피아노를 친다. 그때마다 매 순간 재활의 기쁨을 맛본다. 7년 동안 치료과정을 지켜본 의사들은 이훈은 피아노 연주 때문에 회복이 빠르다고 인정하고 있다. 지금의 상태라면 머지않아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라벨의 곡은 물론 쇼팽 – 고도프스키의 에튀드도 꼭 도전하고 싶다. 어찌 그 작품들뿐이겠는가. 그는 ‘왼손 작품들이 너무 많아 정신을 못차릴 정도’라며 호쾌하게 웃는다.

뇌졸중이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행복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절대 긍정의 피아니스트 이훈. 그의 모습만 보아도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힘을 줄 것 같아 앞으로도 그의 마당발은 한없이 넓어질 것 같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그가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는 그날을 응원하고 싶다. 아마 전석 매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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