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막손’으로 태어나 메이저리거가 되어 명문구단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이란 대기록을 세운 투수 이야기

‘조막손’으로 태어나 메이저리거가 되어 명문구단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이란 대기록을 세운 투수 이야기

1967년 9월 19일 미국 미시간 주 플린트, 10대였던 마이크와 캐시에게서 태어난 아이 그의 이름은 ‘짐 에보트’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손목아래 부분이 없었고, 손가락은 뭉개져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신체에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던 짐은 손을 사용하지 않는 스포츠인 축구보다 공을 던지고 받는 것이 필수인 ‘야구’에 빠지게 되었다. 비록 한 손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단점을 보안하기 위해서 한손으로 글러브도 끼고 공도 던지기 위해 벽에다 고무공을 던지고 받는 연습을 하였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한 동작을 위해 점점 벽과 자신의 거리를 가깝게 했으며 이 연습은 수년간 이어졌다.

‘모든 희망이 없어질 때까지 불가능한 일이란 결코 없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하나의 단순한 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짐 애보트

이러한 불편함은 애보트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1987년 고교리그에서 11승3패 평균자책점 0.76을 기록하게 되었다. 장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 마운드에서 계속 공을 던지던 짐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일본과 미국의 야구 결승전에서 완투승을 거두며 조국에 우승을 선물한다. “취미로만 야구를 하겠지....”, “장애를 가지고 더 큰 무대에 서기 어려울 거야”라는 주위 관계자들의 평가를 뒤로하고 1988년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캘리포니아 엔젤러스와 계약하며 메이저리그 바로 밑 리그인 마이너리그 팀에 입단한다.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단 한경기도 뛰지 않은 채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콜업이 된다. 이는 신체결함을 극복한 인간승리 스토리 때문이 아닌 투수로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 것이다. 그럼에도 장애선수인 그가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지 의문부호들은 계속 되었다.

‘야구장에서 제 팔을 보지않죠, 그저 제 꿈을 볼 뿐입니다’-짐 애보트

짐 애보트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데뷔 시즌에 12승12패 평균자책점 3.92를 기록하였다. 그는 150km를 상회하는 강속구를 뿌렸고, ‘한 손 없이 수비가담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혹들엔 오른손에 글러브를 끼우고 있다가 왼손으로 공을 던진 후 재빨리 글러브를 왼손에 갈아끼우는 그만의 루틴을 보여주며 수비가담에도 문제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그의 오른손에 주목하고 있을 때 짐은 자신이 공을 던지는 왼손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려 했다. 1993년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구단인 ‘뉴욕 양키스’에 이적후 1993년 9월 4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전 선발투수로 출장한 짐 애보트는 4-0승리를 이끌어 내는 동안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은 ‘노히트 노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세계는 그제야 그의 오른손이 아닌 공을 던지는 왼손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메이저리그에서 10년동안 활동한 그의 성적은 통산 87승 108패, 평균자책점 4.25, 888개의 삼진을 잡아냈고, 한 손으로 2개의 안타를 때려내었다.

‘장애가 당신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 역경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당신을 결정한다’- 짐 에보트

그는 1999년 6월 21일 마운드를 떠난 이후 미국전역을 다니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강연을 하고 있다. 푸르덴셜, 엑손 등 유명대기업의 전속 강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꿈과 희망을 전도하고 있다.

‘항상 할 수 있다고 믿으면,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거란다.’- 짐 에보트가 한 소년이 쓴 편지의 답장문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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