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문화의 위기 속에 한국미의 정체성을 토대로 우리 문화의 현대적 계승 및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들이 있다. 지난 12월 20일 한국전통문화 전문가들이 전통문화의 발전을 위해 한국예술비평가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곳에서 우리 전통적인 삶을 감각적인 색채와 선들로 표현한 민화에 매료되어 민화의 전승과 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민화작가 지은순 씨(만 52세)를 만났다. 2003년에 민화를 그리기 시작해 현재 ‘지은순 민화 연구소’와 ‘지은순 민화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한류가 세계 속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사회에서는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13일 동해안별신굿 악사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전통예술원 전 겸임교수 김정희(만58세)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김정희씨는 한예종이 설립된 직후부터 20여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강사법으로 통칭되는 개정 고등교육법 시행을 앞두고 한예종의 강사 임용 기준이 바뀌었다. 전문대 졸업자 이상부터 지원이 가능했지만 대학 학위가 없던 그는 새 제도의 시행에 따른 강사 채용에 지원할 기회조차 없었다. 생활고를 겪던 김정희씨는 스스로 목숨을 던졌다. 최창주(만72세)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은 초중고를 비롯해 대학은 물론 위원회 및 각 문화재단은 우리의 것 보다 서양 것 위주로 지원을 하고 활성화해 한류의 근간이 되는 전통문화가 소외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같은 일이 적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선정은 전통공예인 입장에서 일생일대의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선정 기준은 알 수 없다. 무형문화제 선정과정이 공예 특성을 무시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방짜유기는 품질이 좋은 놋쇠를 녹여 부은 후 다시 두드려 만들어진 그릇이다. 이를 제작하기 위해선 6~7명이 필요하지만 단 한 명만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선정된다. 다른 과정에서 피땀 흘려 고전의 얼을 지켜온 해당 장인들 입장에서는 부당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이 같은 척박한 우리문화 지키기 토대에서 전통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지난 20일 한국예술비평가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것이다. 이들 중 지은순 작가는 뒤늦게 전통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선 사람이다.

지 작가가 민화를 그리게 된 것은 지역에서 운영하는 평생학습교육원 프로그램이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직업으로 삼으려는 계획은 아니었지만 어느새 20년이 다 되어간다. 20년이라는 기간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민화와 함께했다. 처음엔 민화를 알리기 위해 초등학생, 중학생, 그리고 일반인 대상의 체험을 진행했다. 이후 선생님을 대상으로 한 연수강사 일을 하면서 민화와 관련된 이론학습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학문적으로 민화에 다가가기 위해 대학원에 다니며 민화와 관련된 논문을 썼다. 올해 의림지 역사박물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개최하며 했다. 기획한 관광체험마을인 ‘교동 민화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제천시 외부에서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화학회, 민화협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제천시 내에서는 전시회와 민화수업 등의 활동을 한다. 정기적인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씩 두 시간동안 진행되며 일일체험과 같은 체험 프로그램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수업은 해당 민화와 관련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지은순 씨가 어변성룡도를 본 떠 그린 교동 민화마을

“지금 내가 만드는 것이 훗날 민화와 민담처럼 되지 않을까요?”라면서 그가 교동 마을을 선택한 이유는 민화를 연구하며 연구소가 필요한 찰나 이왕이면 어릴 때 살던 동네가 좋을 것 같아 이곳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제천에는 용두산(龍頭山)이 있다. 교동에는 교육기관인 향교와 제천고등학교가 있는데 용두산과 이 곳을 이으면 제천을 한 바퀴 휘감는 용 모양이 그려진다. 어변성룡도(漁變成龍圖)는 물고기가 변해 용이 된다는 고사를 그린 그림이다. 조선시대에는 과거 급제가 출세하고 가문을 빛낼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과거 급제 혹은 출세를 상징하는 도상으로 인기가 높았다. 이에 부합하는 마을이라 생각해 선택했다. 교동민화 마을 특색은 테마가 광범위하지 않고 민화라는 좁은 주제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 마을은 본래의 것에 민화를 접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도자기의 경우엔 민화가 새겨진 도자기를, 요리의 경우엔 어변성룡도를 접목한 ‘용빵’이 있다. 민화에 대한 또 다른 창작이며 많은 것을 새롭게 창출해 낼 수 있는 기회의 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끝까지 마을 사람들과 잘 화합하는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며 이 마을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말했다. 예술마을은 주민과 같이 공생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관광객이 너무 많아도 문제고 너무 적어도 문제다.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한다. 우리의 아이템이 먹거리, 유흥 위주가 아닌 교육과 관련되었다. 이 아이템을 선정한 이유 중 하나이다. 마을 사람들이 교육적인 관광에 자부심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을을 찾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은 그냥 즐겨 주세요. 기호를 파악하는 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죠.”

 현재 마을과 함께한 지 7년차다. 외부적으로 조용한 듯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활성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진행이 빠르면 빨리 망가지기 쉽다. 내실을 다지며 천천히 진행해 오랫동안 이어 나가고 싶다. 처음에는 나 혼자 민화마을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10명 이상이 함께 노력하고 있다. 소규모라도 민화 아카데미를 설립해 깊이 있는 내용을 연구하고 이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양성하고 싶다. 민화가 그려지게 된 근원 등의 깊이 있는 이론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한다. 아카데미 설립은 또 다른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다양한 방식으로 민화의 전승과 대중화에 노력할 것이다.

엄정연 기자3156m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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