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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노력하는 특종 기자 백현주씨를 만나다.
박은지 기자  |  eunji75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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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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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는 한 가지 일만 잘해서 승부수를 던지기에는 인생의 길도 다양하고 분야 분야마다 교차되는 지점이 많아 쉽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시대는 멀티플레이어를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사람들이 보다 더 높이 자아 성취를 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 능력자가 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멀티플레이어, 아나테이너, 폴리테이너, 스포테이너 등등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지금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동승한 한 사람을 만나 그의 성공 과정들을 들어 보았다.  

 

 

첫인상은 벽난로 같은 따뜻함이었다.

   
▲ 세미나에 참석 중인 백현주 기자

경기도 안성에 눈이 많이 내리던 12월 3일 경기도 안성 소재 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내 카페에서 특종기자 출신 백현주 교수를 만났다.  카페에서 마주 앉기 전까지 방송계 대선배를 만난다는 생각에 긴장도 되었지만, 막상 커피잔을 마주하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니 이내 긴장된 마음이 눈 녹듯 녹아 버렸다.  

“뭐 마실래요? 커피 아니면 차?” 

“아닙니다.  제가 인터뷰 요청을 드렸으니 제가 사야죠” 

“그럼 비싸지 않으니까 얻어 마실까요?”

특종기자, 방송인으로 널리 알려진 그녀지만 정작 그녀의 방송 생활 시작은 미취학 아동 때부터였다. 아역배우부터 시작해 유명한 특종 기자가 되기까지 삶 자체를 되돌아보니 백현주 씨의 삶은 방송국 그 자체였다. “방송국은 내 삶이었고 아나운서는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거? 이렇게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직업을 만만히 본 거죠.” 

연예부 특종기자로 잘 알려진 백현주 씨가 꿈꾸던 직업이 처음에는 기자는 아니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본인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허허 웃으며 말했다.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청춘들의 눈에 백현주 씨는 많은 것을 이룬 기성세대인데 시행착오를 겼었다니 뜻밖이었다.  그려는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떤 좌절을 겪었으며 어떤 다짐을 통해 궁극에는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까?

 

방송국이 편했던 아이 새로운 꿈을 꾸다.

백현주 씨는 아역배우 출신인 언니들을 따라 한글을 배우기도 전인 어린 시절부터 항상 방송국 안에서 생활해왔고 자연스럽게 방송에도 출연하게 되며 방송국은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대학교를 들어가서는 본격적으로 진로를 고민해야 했으니까, 생각을 아무리 해봐도 방송은 내 삶의 필수적인 것인데...그렇다면 어떤 것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에 아나운서가 돼서 보도 앵커를 맡아 뉴스 진행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굳히게 되었어요.” 

아가였던 어린 시절부터 ‘말을 잘 한다 발음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들어온 백현주 씨는 9시 뉴스 앵커가 되는 것을 목표로 아나운서를 준비했다고 한다. 

“저는 SBS 방송 아카데미 1기 출신이에요. 그때는 방송 아카데미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수강생 40명을 뽑는데 300명이나 왔어요.” 

방송인이 되기 위해 당연히 아카데미를 수료해야 하는 수순을 밟아야 하는 시대였고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것조차 경쟁이 심했다. 백현주 씨는 40명을 뽑는 관문을 통과하고 그 안에서 방송 실습과 이론 실력을 쌓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며 상당히 열심히 해왔다. 

“방송 실습을 부단히 했어요. 프로그램 진행, 리포터 등 경험할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 아르바이트도 많이 경험했죠. 또 이론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어학 영어점수를 데드라인 이상으로 얻기 위해 영어공부를 상당히 많이 했고, 전공이 중어중문학과라 중국어와 관련된 공부도 노력했고 하여튼 쉼 없이 목표를 향해 노력했어요.”

20대 초중반, 젊은 나이에 세상에 즐거운 일이 너무 많았지만 꿈을 위해 유혹을 참고 자신을 고립시키는 일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방송 자체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실기를 하거나 공부를 하는 매 순간순간이 즐거웠다. 

하지만 이러한 백현주 씨의 도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우리 때는 아나운서에 나이 제한이 있었어요. 강제로 포기를 시킨 거죠.”

과거에는 아나운서를 ‘방송의 꽃’이라는 단어를 썼을 만큼 남자 앵커는 나이가 있어도 괜찮지만 여자 앵커는 꼭 이십 대 중반이어야 했다. 이십 대 후반만 돼도 자리를 넘겨주어야 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백현주 씨가 나이를 뛰어 넘어 도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다. 

 

다양한 경험은 성공의 어머니

아나운서의 꿈을 강제로 포기하게 된 백현주 씨는 한 극단 대표로부터 극단 단원을 뽑는데 도전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요즘에는 연기자의 활동 영역이 예전처럼 한정적이지 않고 DJ, 토크쇼 진행, 시사프로그램 진행도 하니까 오디션을 보고 합격하면 연기를 해보는 것은 어떠냐는 제의를 받았어요. 어렸을 때 아역배우 경험을 토대로 성인 연기 트레이닝을 해보자는 거였죠.”

어렸을 때의 아역배우 경험으로 연기에 대한 이질감이 없고 접근성이 있던 백현주 씨는 그 제안에 동의를 하게 되었고 오디션에 합격한 뒤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 실제로 연극 무대를 하면서 라디오 진행, 방송 진행, 행사 진행 등 다양한 방송 진행자의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언어트레이닝이 연기 도전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왜냐하면 대사를 하는 것도 고저장단을 필수로 알아야 하고 호흡이 반드시 동반돼야 하고 표준어를 잘 구사해야 되기 때문이죠.”

연기는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해야 하는데 백현주 씨가 꿈꾸던 뉴스 앵커는 감정을 빼고 중립적으로 정보를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그것에 익숙했던 그녀에게는 연기의 감정 요소가 다소 힘들기도 했지만, 다른 발성이나 호흡에 대한 기술들은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렇게 연기자에 도전하면서도 진행자의 꿈을 놓지 않고 있었던 백현주 씨는 대학원에 진학을 하게 됐다. 

“나이를 먹고 나서 전문성이 없으면 마이크를 잡고 생존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의 전문성을 강화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학력을 더 쌓기 위해 원래 전공과 같은 중어중문학 석사과정 대학원에 들어가게 된 거죠.”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을 공부하던 백현주 씨는 2000년대 초반 당시로서는 어문계열에서 다소 특이하게 중국 영화와 관련된 논문을 써 학위를 마쳤다.  백현주 씨의 표현에 의하면 영화전공자가 아닌데 영화로 중문학 학위를 받는다는 것을 낯설어했다는 것이다. 

당시 중어중문학과에 중국 영화를 전공하시는 분들이 극히 드물었고, 가르쳐 주기도 난해한 부분이어서 모두가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영화를 너무 좋아했던 백현주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중국어는 언어적인 접근성이 쉽지 않아 중국어를 전공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도전하게 되었어요. 분명 희소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죠.”  

 

색다른 도전, 기회가 되다.

새롭게 만들어진 채널에서 영화 전문기자를 충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백현주 씨는 영화에 관련된 졸업 논문과 방송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전문기자에 도전장을 내밀게 되었다.  

“제가 갖춘 방송 경험과 학위, 그리고 영화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면 충분히 도전장을 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송사에서도 필요조건이 맞는다고 생각돼 저를 채용했겠죠. 그때부터 직종 전환이 된 거죠.”

그렇게 시작된 기자로서의 생활은 이전보다 훨씬 큰 만족도를 주었다.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이 직업이 나랑 궁합이 잘 맞더라고요. 내가 왜 이걸 이제야 했지? 할 정도로 취재를 하고 인터뷰를 하고 그 기사를 토대로 뉴스와 방송을 만들고 또 스튜디오에 출현을 해 대담을 하고 진행을 하는 것들이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고 즐기면서 했어요.”

일을 즐기면서 하니 당연히 능률이 오를 수밖에 없었고 남들이 한 단계를 올라갈 때 두세 단계씩 올라가게 되었다. 기자로 활동하는 동안은 휴일이 거의 없다시피 살았다고 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어떤 해에는 일부러 달력에 빨간 표시가 없는 걸 선택해 자신의 회사 테이블에 놓고 일을 했을 만큼 뒤늦게 만난 천직에 푹 빠져 산 셈이다.  

 

포털 사이트의 시대, 지금의 백현주를 만들다.

영화 전문기자로 열심히 활동을 하던 시기에 포털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상업의 논리로 인해 모든 언론사, 방송국들은 포털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백현주 씨 역시 그런 포털 상황에 방목이 되면서 영화뿐만 아닌 다양한 장르의 기사를 쓰는 말 그대로 분야 초월 문화부 취재 기자가 되었다.

“포털 사이트가 막 열렸을 때 검색어 1위에 잡히는 기사를 쓰기 위해서 제가 좋아하던 영화뿐만 아니라 코미디, 드라마, 영화, 가요, 연극, 무용, 클래식 등등 전방위 취재를 해서 독점, 단독 이슈를 만들어야 했어요. 이슈를 만드는 여전사, 스나이퍼가 된 거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문화부 전체를 아우르는 기자가 된 거죠.”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특종, 단독 기사를 쓰게 된 백현주 씨는 포털 메인에 자신의 기사가 뜨기 시작하면서 본인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다양한 채널과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그럴수록 책임감이 깊어졌었다고 회상했다. 

“제 기사가 이슈가 되고 주목을 받으니까 취재 대상의 사생활 침해를 너무 하지 않는 선을 유지하며 사람들의 알 권리와 맞춰 공정하게 취재를 하고 보도를 하는 것에 대해 책임감이 깊어졌어요.”

처음에는 포털 사이트 메인에 뜬 자신의 기사를 보며 보람과 두려움이 함께 교차했지만 기사는 길이길이 남는 문학작품이 아닌 단시간 소비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는 검색어 1위를 기사의 파급력을 돌아보는 바로미터 정도로 담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백현주 씨는 지금까지 길이길이 남는 기사들이 몇 가지 있지만 그 기사들을 취재를 잘 했었구나 정도지 어디 가서 두고두고 얘기하거나 하지 않는다.

 

돌아서 도착한 나의 꿈  

KBS2TV ‘생생정보통’을 통해 국민 기자가 된 후로는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교양과 시사 프로그램을 주로 방영하는 KBS1 채널에 진입하는 것이 그 당시 목표였던 백현주 씨는 “즐거운 책 읽기” 도서 프로그램에 패널 출현 제안을 받게 되었다. 

“저는 그때 너무 기뻤어요. 저는 중국 문학을 전공을 했기 때문에 내 전문성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에서 어떠한 책을 읽고 평론을 하고 논의를 해도 충분히 할 자신이 있었어요.”

끊임없이 자신을 준비한 것, 준비의 과정과 그로 인한 실력으로 인해 본인에게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중국 철학서, 서양 인문학사, 서양 철학서 등 아무리 어려운 주제의 책 들이어도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었기 때문에 좋은 해석들이 나올 수 있었고 기쁘고 반응 좋게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처음 꾸었던 아나운서의 꿈을 언제 이룬 것 같냐는 질문에 백현주 씨는 본인이 처음 꿈꾸었던 아나운서의 꿈은 기자 생활을 하며 뉴스 진행의 앵커, 생방송 중계, 스탠딩 리포팅, 대담 등을 통해 모두 이루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꿈을 향해 가는 것은 무조건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인가 방법에 대한 것도 중요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어떤 목적지를 가는데 길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마다 온 길은 다들 달라요. 내가 인생의 목적지를 설정했을 때 지금 가는 길이 너무 험난하고 힘이 든다면 자포자기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이 길이 내게 맞는 길인지 점검해 보세요. 다른 길이 있다면 그길로 우회해서 가면 돼요. 그 길이 오히려 더 짧을 수도 있어요.”

 

 

박은지 기자 eunji7568@naver.com

박은지 기자  eunji75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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