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대표 김수정 씨를 만났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배리어프리영화의 제작·배급 등을 통해 시청각장애인, 노인, 다문화 가정의 문화 향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배리어프리는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의미의 운동이다. 휠체어 장애인, 노인, 유모차 이용자 등의 건물 접근도를 높이기 위한 엘리베이터, 슬로프 등이 이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배리어프리영화는 모든 사람이 영화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화면해설과 화자 및 대사, 음악 등의 소리정보를 알려주는 해설자막이 나타나는 영화를 말한다.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김수정 대표 인터뷰 현장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김수정 대표 인터뷰 현장

 “저는 원래 영화를 하던 사람이었고 우연한 기회로 일본에서 열리는 사가 배리어프리영화제에 참가했었는데 그곳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누구나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이런 영화를 왜 우리는 못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런 생각을 계기로 후에 배리어프리영화를 하나 제작해봤었어요. 무모한 시도였지만 그때가 출발점이 된 거죠. 계산적으로 득실을 따지는 것보다 그냥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먼저였고 그 마음 하나로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2011년에 설립된 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영화인들이 모여있는 위원회인 만큼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활동은 역시 배리어프리영화의 제작이다.

 “배리어프리영화를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관람하는 이로 하여금 화면해설을 듣거나 자막을 보는 것에 치중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기준인 거죠. 그래서 화면해설의 양과 내레이터 선정, 화면해설의 톤, 대사의 타이밍 등 여러 부분을 고려하면서 제작하고 있습니다. 배리어프리영화는 영화진흥위원회 사업으로 농아인협회와 한국시각장애인협회에서도 제작되고 있는데, 1년에 24편에서 27편 정도 작업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희 위원회는 해마다 평균적으로 7편에서 9편 정도를 제작하고 있고요. 하지만 다 합쳐도 1년에 국내에서 제작되는 배리어프리영화가 40편 미만이에요. 1년에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들은 거의 수천 편 정도 되는데 배리어프리영화는 턱없이 부족한 거죠. 꼭 만들어져야 한다는 법적인 기준도 없고 영화를 제작할 때 배리어프리버전 작업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사후 작업으로 배리어프리버전이 제작되면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근본적으로 장애인들이 영화를 본다는 인식이 너무 부족해요. 다양한 관객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 개선이 먼저 이루어져야 배리어프리영화가 우리 사회에 전체적으로 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리어프리영화의 형태는 영화에 화면해설과 해설자막이 일체형으로 함께 있는 오픈형이다. 눈 또는 귀가 불편한 관객에게는 문제가 없지만 비장애인들의 경우 과도한 정보전달로 느껴져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때문에 배리어프리영화를 어색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 이뤄졌고,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폐쇄 시스템(Closed System)이다.

 “개별 기기를 가지고 영화를 관람하는 형태를 폐쇄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폐쇄 시스템의 의의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게끔 한다는 거예요. 특히 미국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제 때문에 많은 고소·고발을 당하고 그에 대처하는 방향으로 여러 기기들을 개발했어요. 그리고 일본의 경우에는 극장에서 배리어프리영화를 보편화하기 위해 극장 담당자들의 교육이 함께 진행됐었죠. 관객들이 모르고 영화관에 입장했을 때는 ‘저 사람은 왜 휴대폰 해?’, ‘왜 특이한 안경을 쓰고 영화를 보지?’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옆에 이어폰을 끼고 있는 사람한테서 소리가 샐 수도 있는 거고요. 그래서 ‘이 영화는 배리어프리버전이니까 개별 기기를 쓰는 사람들이 있어도 영화를 보기 위한 것이니 양해해달라’고 설명해주는 캠페인이 먼저 퍼진 거죠. 한국에서도 물론 폐쇄 시스템에 대해 계속 연구 중이고 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극장들은 비장애인 관객들이 컴플레인을 걸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꺼리고 있어요. 극장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고객의 소리거든요. 그래서 이런 면에 대해 비장애인들이 먼저 나서서 ‘개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야 극장도 움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들의 문화적 권리를 찾기 위한 차별구제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 2016년 시청각 장애인 4명이 영화사업자들을 상대로 자막과 보청기기, 화면해설 파일 등을 보편적으로 제공할 것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결과 1심에서는 원고 측이 승소했지만 영화사 측이 곧바로 항소한 상태다.

 이처럼 사회적 소수자의 문화적 권리를 얻기 위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수년간의 다툼 끝에 승소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도 모든 이의 문화 향유를 위해 일하는 만큼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효과적일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배리어프리영화가 우리 사회의 일상으로 녹아들기 위한 활동들을 시작했다.

 “배리어프리영화를 알리기 위한 저희 위원회의 활동에는 배리어프리영화 제작, 교육 진행, 상영회 및 영화제 개최 등이 있습니다. 일단 제작적인 면에서는 다른 영화인들과 같이 작업을 하는 게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많은 배우분들, 감독님들이 함께 하자고 먼저 얘기해 주시기도 하고 저희가 손을 내밀었을 때 일정만 맞는다면 얼마든지 참여해주시니까 그런 부분들이 저희한테는 큰 힘이 됐죠.

 또 교육에 대해 얘기하자면, 일단 저희가 교육을 진행할 때 주제가 크게 두 가지에요. 배리어프리영화를 제작하는 제작교육과 배리어프리영화와 함께하는 장애에 대한 공감교육으로 나뉘어요. 교육을 기획하게 된 건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눈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시작하게 됐습니다. 세상은 내가 아는 만큼 보이는 거잖아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나의 시각을 달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드리자는 의미에서 다양한 교육들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는 이번 년에 들어서 9회를 맞이했어요. 자체적으로 영화제를 개최하기 시작한 건 기존의 장애인 영화제에 방문하면서 문득 든 생각 때문이었어요. 물론 장애인영화제들이 의미도 좋고 작품성 있는 영화들이 출품하긴 하지만 ‘그곳에 영화인들이 가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는 원래 영화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장애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 축제를 만들자’는 생각이 시초가 된 거죠. 그래서 저희는 장애인, 비장애인 상관없이 원하면 자막도 볼 수 있고, 수어가 내 언어라면 수어를 통해서 진행하는 Q&A도 들을 수 있게 영화제를 준비했어요. 영화제 프로그램 중 하나인 ‘치매친화상영’도 그 노력중 하나라고 볼 수 있죠. 누가 봐도 불편하지 않은, 누가 와도 불편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들고 싶었고 지금도 그 목적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배리어프리영화에 대한 인식이 낮은 우리나라에서 이같은 활동들을 이어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배리어프리위원회는 ‘굳이 배리어프리영화가 필요한가’라는 시선에 부딪히며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반복적인 행위에 권태를 느낄 만도 했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던 것은 위원회가 설립 때부터 가지고 있는 신념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영화라는 것이 있고 영화가 어떤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영화 자체가 모두가 보고 느낄 수 있는 미디어여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짐을 갖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처럼, 안 보일 때는 화면해설이 필요하고 못 들을 때는 자막과 수어가 필요한 것뿐이에요. 그래서 저희 위원회는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해서 만들어야 한다’가 아니라 ‘당연한 일을 하는 김에 잘 만들고 싶다’라는 마음인 거죠. 저희는 이 마음 그대로, 배리어프리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뉴스로 보도되지 않는 날까지 영화를 제작할 계획입니다.”

 김수정 대표는 영화인으로서 자신의 관객이 되어줄 모든 사람들의 상황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배리어프리영화는 복지가 아닌 하나의 엔터테인먼트이기에, 김 대표는 그저 영화의 질적 향상에 대해 고찰하며 묵묵히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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