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의 양형기준을 재정비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자신이 올해 초, 과거 당했던 성폭력을 고소하게 된 피해자라고 밝혔다. 가해자는 고소 전에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그 자백을 바탕으로 고소를 진행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소유예였다. 청원에는 법원의 참작 사유를 “서로 호감이 있었고 여자가 뽀뽀를 했기 때문”이었다고 썼다. 청원인은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여자도 좋으면서 튕기는 거 아냐”와 같은 가해자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비판하며 “서로 호감 사이였기 때문에 감형, 폭행과 협박이 없어서 무죄,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아서 감형”과 같은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 양형기준의 재정비를 촉구했다.

이 국민청원은 구하라(28)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 빠르게 퍼졌다. 구씨의 죽음 이면에 사생활 영상 유포, 협박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 남자친구 최모씨(28)에 대한 법원의 집행유예 선고가 영향을 미쳤을 거란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해당 청원은 25일 오전, 구씨가 사망한 지 채 하루도 안돼 20만 명을 돌파했다.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답변을 해야 하는 기준인 20만 명을 초과한 것이다.

구씨의 전 남자친구 최씨에 대한 1심 판결도 해당 청원과 같은 이유에서 논란이 일었다. 법원은 최씨의 혐의 중 불법 촬영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피해자 몰래 나체 사진을 촬영했고 당시 피고인이 피해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찍은 것은 맞지만 당시 피해자가 촬영을 막지 않는 등 몰래 촬영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한 “피고인은 동영상을 유포하거나 제보하지 않았으며 이를 빌미로 금품을 요구하거나 피해자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을 갖게 하지도 않았다”고 성폭력 범죄에 대한 무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법원의 판결은 최씨의 재물손괴와 상해, 협박, 강요만을 유죄로 인정해 지난 8월,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이었다. 현재는 최모씨와 검찰 모두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고인이 피해자인 만큼 더욱 공정한 재판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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