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의 악성루머

K 네티즌씨!

안녕하십니까?

얼굴은 볼 수 없지만, 어디서나 만날 수 있어 누구보다 친밀한 당신께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혹시 “빵이 없으면 케이크(브리오슈)를 먹으면 되잖아요.”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익히 들어봤을 거라 여겨지는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말입니다.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악성 루머 중 하나인 이 발언은,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에 나오는 예화의 일부입니다. 루소가 책을 집필한 1766년에는 앙투아네트의 나이가 11세에 불과했습니다. 인용된 예화의 배경은 1740년대로,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그녀는 할 수가 없는 말이었습니다.

 

K씨!

시민들이 굶주리지 않게 감자빵을 장려하고 제빵학교까지 후원했던 그녀의 억울함을 우리가 헤아릴 수 있을까요? 앙투아네트는 혼란한 혁명의 소용돌이 속,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진 경제적 상황 때문에 벼랑 끝에 몰린 대중들의 타깃이 되었습니다. 당시 공화당을 지지하던 자코뱅파가 정권을 잡고 시행했던 공포정치의 희생양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부정부패, 국가재정 낭비, 백성에 대한 기만, 친정인 오스트리아와 결탁한 죄 등 끝도 없는 혐의들을 뒤집어썼지만 모두 무죄로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민중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혁명정부와 민중들에겐 그저 분노할 대상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K씨, 결국 그녀는 어린 아들과의 근친상간이라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1793년 10월 16일 처형당했습니다. 당시 8세였던 그녀의 아들은 반대파의 학대로 인해 제대로 된 진술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 판결 역시도 훗날 무효화됐지만,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K씨!

당신은 당시 프랑스 군중들처럼 사실 여부가 아닌 분노의 대상만을 필요로 한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에 집행된 것을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단 한 건의 사형도 집행된 적이 없습니다. 앙투아네트처럼 억울한 혐의를 뒤집어쓰더라도 처형대에 오를 일은 없지만, 그렇다면 악성루머의 주인공으로 지목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상상해보시겠습니까?

 

K씨!

악의적인 루머의 사례는 국내에도 수없이 많습니다. 2009년 11월 가수 타블로의 학력위조 논란이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논란의 핵심은 타블로가 나온 미국 명문 스탠퍼드 대학이었습니다. 타블로에게 진상을 요구한다는 뜻의 ‘타진요’ 안티카페를 선두로, 타블로의 학력 위조설은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타블로 측은 스탠퍼드 대학 성적표 등을 공개했지만 비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타블로와 '타진요'는 약 3년 동안의 법정 공방을 통해 2012년 7월, 법원이 타블로의 손을 들어주면서 끝났습니다. 그 이후 ‘힐링캠프’에 출연한 타블로는 "학력 의심이 가족에게도 옮겨갔다. 우리 가족도 학력 위조하고 경력 위조를 했다고 하더라", "어머니가 미용실을 했는데 그것도 결국 못하게 됐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사실을 입증할만한 사진과 증언, 증명 서류들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동안 타블로를 괴롭힌 타진요의 모습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사형대로 몰고 간 당시 대중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K씨!

소설<주홍글씨>를 떠올려 주십시오. 책에 등장하는 엄격한 계율의 보스턴에서는 간통죄를 범한 자를 모든 사람들 앞에 세우고, 가슴에 'A'라고 하는 주홍 글씨의 낙인을 찍어 일생을 살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주홍글씨는 지울 수 없는 잘못이나 평생을 따라다니는 사건, 꼬리표를 말합니다. 당신이 주목하고, 대중에게 영향을 많이 끼치는 사람일수록 꼬리표가 붙기 쉽고, 한번 붙은 꼬리표는 떼기가 쉽지 않습니다.

 

K씨!

뜬소문을 뜻하는 ‘카더라 통신’을 듣고, 전하며 악성루머를 유포하는 것이 한 순간은 당신의 답답한 현실에 스트레스 해소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그것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아님 말고’식으로 어깨 한번 으쓱이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잠깐을 위해 낙인이 찍힌 채로 일생을 살아가게 될 사람들을 생각해주십시오. 이런 제 말이, 정말 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그들의 사과문 한 장 만으로 모두 잊어주자는 이야기로 들릴까 걱정됩니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일단 판결이 확정된 사건은 다시 죄로 물어선 안 되지만, 다시 자리로 복귀한 유명인이 그 죄를 농담으로, 유머로 소비한다면 그 파급력은 단지 죄에 대한 경각심을 낮추는 문제로만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 번 죄를 저지른 사람은 그에 대해 꾸준히 조심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 늦게나마 타의 모범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K씨!

저는 무책임한 악성루머에 대해 당신과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마리 앙투와네트가 사형대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은, 사형 집행인의 발을 실수로 밟았을 때 한 사과입니다.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실수로 발을 밟는 것 정도로는 사람을 죽일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K씨의 성난 말과 글과 시선이 또 다른 K씨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모인 무수한 K씨들이 누군가를 공격한다면 어떨까요? 하지도 않은 죄를 짓고 사형대에 올라, 마지막까지 사과의 말을 남긴 앙투아네트와 같은 희생양을 더는 만들기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이지 않는 당신이 만들어낸 죄목으로 주홍글씨가 찍혀 피해를 보는 사람이 더는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주십시오. 입으로 말을 옮기고 손으로 의심과 질타의 메시지를 전할 때, 그 작은 한 줄이 만들어낼 나비효과를 경계해주십시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길 바랍니다. 이 악성루머의 화살이 언젠가 당신에게 겨눠질 때가 올까 걱정됩니다. 제 부탁을 들어줄 당신에게도, 또 다른 당신에게도 앞으로 억울한 주홍글씨가 새겨지지 않길 빕니다.

 

더위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평안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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