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화면에 나타난 멋진 배우와 그들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드라마는 대중들에게 환상을 주고, 대리만족하게 하며, 그날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준다. 그것이 배우들이 엮어낸 환상의 드라마 세계이고, 화려함이다. 물론 드라마의 화려함 뒤에 수많은 스태프들의 땀과 눈물이 녹아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대중들은 한 회가 끝나면 아쉬워하고 화려함과 환상으로 다가올 다음 회를 기다린다.

 

비정상적인 노동시간이 정상적인 척 위장하다

드라마의 화려함과 환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많은 스태프들의 노고는 이제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것 같다.  지난 4월 10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와 희망연대노조가 드라마 제작사인 스튜디오 드래곤을 고발하면서 한류의 주역인 드라마 스태프들이 주당 100시간 이상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는 매일 15시간 이상을 오직 ‘노동’에 시달릴 때 가능한 시간이다.

드라마 왕국이라고 불리는 CJ E&M 소속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은 최근 <아스달 연대기>를 제작했다. 스튜디오 드래곤은 새로운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이들 단체의 고발 내용에 의하면 스태프들은 주당 100시간 이상의 노동은 기본이며 해외 촬영의 경우에는 주당 151시간씩 노동했었다.

긴 노동시간은 위험한 노동 환경으로 이어졌다. 해외 촬영할 때의 일화이다. 카누를 운영하는 현지인이 잠도 부족한 상황에서 밤 늦은 시간에 카누를 타는 것은 위험하다며 만류했었다. 하지만 제작사 리더들은 제작 일자를 하루라도 줄이겠다는 생각에서 늦은 밤에 카누를 타고 연기하는 장면의 촬영을 진행하게 했다. 스태프들은 말없이 따라야 했다. 이것이 드라마 제작현장의 관행으로 굳어온 지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제작 업계에서는 이러한 노동 실태를 방송 용어를 이용해 ‘디졸브 노동’이라고 부른다. 디졸브는 앞의 화면과 뒤의 화면이 겹쳐서 이어지는 것을 일컫는데, ‘디졸브 노동’은 밤샘 촬영 직후 다음날 오전 일찍부터 촬영을 재개하는 드라마 현장의 장시간 노동실태를 뜻하는 말이다.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거의 모든 스태프들이 이같은 강한 노동 강도를 견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업계의 노동실태가 사회적으로 크게 대두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견뎌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암묵적 관행을 드라마 제작 업계 종사자들 대다수가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스태프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견디는 것이 당연했던 과거의 선배 스태프들이 연차를 높아져 제작사의 리더가 되고, 이들이 그들의 사고를 후배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함으로써 이러한 노동 현실은 당연한 관행으로 굳어져 내려오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 역시 근로시간 제한 정책을 시행하면서 방송 제작업계는 근로기준법으로 제정된 주52시간 근무제 특례 제외 업종으로 규정하고, 규제에서 제외시켰다.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관행이라는 명분으로 옳지 않은 것이 굳어지고 이어진다면 더 큰 불행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관행이라도 옳지 않으면 반추해보고 반드시 재조명 되어야 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업계 특성상 근무 시간을 정확히 규제하고 지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에 제정되어 있는 주당 68시간 근무제 조차도 지키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이라니, 드라마 스태프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디ㅡㅏㅓㅓ

 

자본이 사람보다 우선이 된 드라마 시장

그러나 드라마 제작 업계의 이 같은 열악한 노동시간 관행의 근본 이유는 자본의 시장 논리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CJ E&M이 제작한 <아스달 연대기>의 해외 촬영은 주당 151시간으로 만들어졌다. 정해진 기간을 넘겨 촬영 기간이 길어질수록 추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잠을 줄여서라도 촬영을 밀어붙여야 제작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노동 시간이 길어지면 초과근무 수당이라도 많이 받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드라마 제작사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외주 제작사들과 턴키계약을 맺는다. 턴키계약이란 상세 노동시간이나 세부 급여 항목 등의 구체적 산정 기준을 명시하지 않은 채 팀 단위로 맺는 계약이다. 급여는 근무 시간을 일일이 계산해 산정되지 않고 드라마 제작 분량에 대해 총액으로 계산된다. 급여를 주는 제작사는 스태프들이 현장에서 몇 시간을 노동하건 추가 수당이라는 책임에서 자유로워진다. 턴키계약은 제작사가 사전 근로계약을 피하고 스태프의 노동조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꼼수로 활용된다.

신인 보조작가의 경우 한 달에 100만원도 안되는 급여를 받는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조사한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보조작가들은 주당 평균 53.8시간을 노동한다. 1시간당 약 5,300원으로 보조 작가들은 최저 시급조차 받지 못하고 실정이다. 보조작가인 김양(27)은 “작가들의 임금이나 처우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정당하지 못한 급여 체계도 앞서 말한 ‘관행’의 일부가 되었다.

열악한 노동 실태,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드라마 업계의 근로 상황은 위법 그 자체이다. 제작사들은 근로기준법에 지정된 노동시간을 초과하면서 온갖 꼼수로 처벌을 피하고 있다. 노동 시간과 강도, 대가 어느 것 하나 국가의 법 아래에서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스태프들은 이대로 계속해서 홀로 싸워야 하는 것인가? 법이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이들은 어디에 기대야 하는가?

드라마 제작은 상당한 창의성과 정밀함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러한 근무 환경이라면 스태프들의 능률이 저하되고 그 끝에는 국내 드라마의 침체기가 찾아올 것이다. 높은 성과를 위해서는 적당한 쉼이 필요하다. 주변을 점검하고 환기하는 것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최근 국내 드라마가 한류 열풍을 타며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동시에 해외의 드라마와 영화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국내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제는 해외 시장과 경쟁해야 한다. 이대로 스태프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이루지 못하고 해외 드라마에 잠식당할 것이다.

드라마 제작 업계의 약자들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 드라마의 발전을 위해서, 이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노동 환경의 개선이 바로 이뤄질 수는 없겠지만 정해진 법대로 노동 환경을 보장하는 것부터 첫발을 내딛어야 한다. 정해진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엄중히 처벌해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해야 하고, 바로잡는 과정을 통해 업계에 퍼져 있는 잘못된 관행 또한 부숴야 한다. 개인은 용기를 내어 고발해야 하고, 국가는 그들을 보호하며 위법한 행위를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 당연하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는 문제들을 먼저 바로잡아야 비로소 완벽한 개혁을 꿈꿀 수 있다.

지금도 제작환경 개선을 위해 많은 스태프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예상할 수 없다. 앞으로 다가올 더 큰 피해를 막고자 한다면 반드시 지금부터 시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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