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뇌도 나이와 더불어 약해진다. 같은 조건을 타고났어도 어떤 사람은 신체 나이보다 많이 나빠져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반대로 젊은 뇌를 유지하고 있다. 젊은 뇌를 오래 유지하려면 뇌의 노화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

치매가 되기 바로 전 단계를 경도인지장애라 하고, 경도인지장애의 전 단계를 ‘임상적 정상’이라 한다. 임상적 정상은 치매로 향하는 뇌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도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뚜렷하지 않고 검사로 병이 든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진단 결과가 정상이라는 말과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뇌의 변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변화가 곧바로 치매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변화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또한 이 정도의 변화로는 직장이나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으므로 당장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돌멩이를 멀리 던지면 날아가면서 지구의 중력에 의해 점점 빨리 떨어진다. 우리의 기억이 떨어지는 것도 처음에는 표가 잘 나지 않지만 치매가 되면 나빠지는 속도가 돌멩이가 땅에 떨어지듯이 가속도가 붙어 점점 빨라진다. 기억이 떨어지는 정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하여 수치로 밝힐 수는 없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임의의 숫자를 사용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70세 초반에 치매에 걸려 80대 초중반에 운명한 사람의 경우를 보자. 60대 중반쯤 기억력이 약 10퍼센트 정도 떨어졌다. 이때까지를 정상(임상적 정상)이라 하고, 이 시점부터 조금씩 계속 나빠져 70대 초반에 기억력이 40퍼센트 정도 떨어질 때까지의 기간을 경도인지장애, 이후 기억력이 점점 더 빨리 떨어지는 기간을 치매라 한다.

치매가 시작되는 이 시점, 즉 기억력이 40퍼센트 정도 떨어졌을 때 뇌세포는 60퍼센트가 파괴되었고 나머지 세포도 대부분 병적인 상태로 뇌의 전체적인 역량은 70퍼센트 정도 소실된 상태이다. 이렇게 70퍼센트의 역량이 소실될 때까지는 여러 가지 뇌기능의 결핍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치매라고 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부서져도 치매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이 부분을 ‘뇌의 예비능’이라 한다. 치매로 진단될 때는 이미 예비능이 모두 소진될 정도로 뇌가 많이 손상되었다는 것이다.

60대 초중반 경도인지장애가 시작되는 시점에 기억력이 10퍼센트 떨어진 경우도 뇌세포는 이미 20퍼센트 정도 파괴되었고, 나머지 세포도 병적(세포 내 타우단백의 축적으로)인 상태이거나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독성 단백질 찌꺼기에 시달림을 받는 상태이고, 건강한 뇌세포는 2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로 본인이 뇌가 약해졌음을 느끼는 주관적 경도인지장애가 되면 스스로 자꾸 깜빡거린다고 생각한다. 더 진행되면 주위 사람도 알게 될 정도로 기억이 나빠져 객관적 경도인지장애가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의 경우 정상으로 생각되는 50대 후반부터 뇌가 조금씩 나빠지는 경고음을 보냈지만 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건망증이 증가하여 차를 어디에 주차해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낭패를 보는 일이 잦아졌다. 사람이나 물건의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도 많아졌고 대화를 나눌 때도 목적어를 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아 상대방이 말을 못 알아듣는 일도 자주 발생했다. 또한 평소보다 화를 잘 내기 시작해 배우자가 힘들어 했고, 여러 가지 사고력이나 사고의 내용이 빈약해져 친구들과 만나도 재미가 없고 점점 더 어울리는 일이 줄어들었다. 불면도 심해졌고 편두통이 자주 발생하거나 머리에 안개가 낀 듯 맑지 못한 날이 많아졌다. 늘 하던 일만 했지 새로운 변화는 거부했다.

이렇게 많은 경고음에도 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조금도 느끼지 않고 지냈다. 다시 말하면 임상적으로 정상이었던 기간에도 이미 뇌세포가 상당히 소실되었거나 곧 부서질 상태로 많이 변해 있었지만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방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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