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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전도사 최건강의 이야기와 깨달음-나도 치매환자 가족입니다!
서재호 기자  |  mbtimkt@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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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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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족중에 치매환자가 있습니까?

내 어머니도 치매 환자입니다.

나는 엄마가 워낙 깔끔하시고 지혜로우신 분이라 엄마는 곱게 나이 들어가시다 주무실 때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시리라 막연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고향이 개성인데 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 오셔서 국제시장에서 아버지와 만나 결혼하시고 오빠를 낳으셨습니다.

그때는 사회가 혼란스러워서 그런지 두 집 살림을 하는 가장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외도로 엄마는 살던 집을 정리하고 혼자 아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시게 되셨답니다. 부산에서 사시는 것이 괴로우셨겠지요.

아버지가 서울에 오르락내리락 하시며 사죄하시는 동안 나는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워낙 고모께서 엄마를 사랑하시는지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엄마만이 꾸리는 가정에서 잘 자라왔습니다.

엄마는 사업도 지혜롭게 잘 하셨고 교육 열정도 강하셔서 당신의 무학에 대한 대리만족으로 우리 자식들에 대한 교육열이 대단하셨습니다. 사랑이 각별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늘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고모 덕분으로 혼자 사시는 엄마가 키우셨어도 아버지 없이 자란 우리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성장했습니다.

칠십 세 후반까지도 서울대가 있는 신림동 고시촌에서 혼자 생활을 잘 하셨습니다. 자신의 무학이 평생 아쉬운 한으로 남아서 학생들의 고시 공부와 입사준비를 돕는다는 것을 노후의 소명으로 생각하시고 재밌게 일하셨던 분이십니다.

최고의 일간지에도 전면 인터뷰 기사가 났던 ‘굳세어라, 금순아!’의 주인공입니다. 차라리 힘드셔도 계속 일을 하시게 했어야 한 것 아닌가 하는 후회도 했었습니다. 팔십 세가 되기 전에 하시던 일을 정리하시도록 우리는 간곡하게 부탁드렸고 엄마는 우리가 사는 동네 근처 아파트로 이사오셨습니다.

신접살림을 차리듯이 기뻐하셨습니다. 처음으로 혼자 사는 감격의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새 동네 노인정에도 잘 나가셨고 복지가 잘 되어 있어 노인대학에 연거푸 세 번이나 입학하셔서 졸업장을 받아 오시는 열정적인 학구열을 보이기도 하셨습니다.

그 당시 김철수 원장은 병원도 바쁘고 나는 나대로 출판사 일로 정신없는 때였습니다. 엄마가 사셨던 신림동을 자주 놀러 가셨는데 어느 날 집을 찾을 수 없다고 전화가 온 것입니다. 길에 가던 모르는 남자의 전화였습니다. 나는 놀라서 대학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건강검진을 해드렸습니다.

경도인지장애로 치매 진행을 늦추는 약을 드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놀라고 걱정도 되었지만 ‘나이 들면 누구나 그런 거라고 위로하며 한 이십 년 정도는 지나야 오겠지’ 하고 어리석은 나만의 상상을 하였습니다.

석 달마다 한 번씩 모시고 갔습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주시는 약을 드시는 것만으로 오랫동안 엄마의 치매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독립적이고 자존심이 강하셔서 늘 우리더러 바쁘니 당신은 걱정하지 말라던 엄마가 자주 안 온다고 화를 내셨습니다.

더구나 지난주에 찾아뵈었는데도 말입니다. 이상하다며 김철수 원장은 가보자 하였습니다. 일과 끝나고 저녁 퇴근길에 가보니 엄마가 이상했습니다. 몹시 서운해 하시고 자식도 소용없다 시며 불평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위 앞에서는 예의를 갖추시는 분이신데 거침없이 불만을 토로하셨습니다. 깔끔하던 집안도 어수선하고 냉장고도 열어보니 오랫동안 시장을 보지 않으신 듯했습니다. 자주 오겠다고 약속하고 집에 돌아왔으나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다음날 반찬 몇 가지를 준비해 다시 찾아뵈었습니다. 따뜻한 말과 위로를 해드리며 식사 거르시지 마시고 잘 드시라고 냉장고에 반찬을 넣어드리고 돌아왔습니다.

삼 일이 지나 다시 찾아뵈었습니다. 걱정되어 다시 찾아뵌 것입니다. 가보니 식탁 위에 멸치 반찬 통만 나와 있고 부엌이 또 어수선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엄마, 멸치볶음이 그렇게 맛있었어요? 멸치볶음만 드셨네!”

“아무것도 없고 멸치만 있으니까 그렇지!”

“네? 다른 반찬도 가져다 드렸잖아요. 여기, 냉장고에” 하면서 냉장고를 여는 순간!

엄마가 냉장고 여는 것을 잊어버리셨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앞이 하얘졌습니다. 겁이 나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까마득하게 한참 있다가 올 일이 갑자기 왔다는 것을 안 순간 얼마나 죄송하고 슬펐는지 모릅니다.

혼자 계시게 한 것, 약을 잘 드시고 계시다고 믿고 관심 갖지 않은 것, 후회와 걱정이 교차할 틈도 없이 나는 엄마의 간단한 짐을 꾸려 바로 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더는 혼자 계시게 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혼자 계시는 것이 두려웠을까를 생각하면 글 쓰는 이 순간에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똑똑한 우리 엄마가 치매라니!” 그때야 치매인 엄마를 인식한 것입니다. 치매이신 엄마가 보인 것입니다. 후회해도 소용없고 불효한 자신이 미워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후로 치매를 치료해드리며 6년째 모시고 있지만 지난 시간이 마음 아파 아직도 눈물이 납니다.

좀 더 안아드리고 좀 더 이야기 들어 드리고 모시고 여행 좀 다닐걸.

지난 이야기 많이 나누고 좀 더 웃고 더 많은 삶의 지혜를 배울걸.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애쓰셨다고 고생 많이 하셨다고 위로해드릴걸.

예쁘다고 착하다고 사랑한다고 말씀해주시는 엄마 볼에 뽀뽀를 해드리며 후회하고 후회하는 지난 시간입니다.

나는 만나는 많은 분께 말합니다. 지금 현재가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걸으실 수 있는 감사함, 말할 수 있는 감사함, 혼자서 식사하실 수 있는 감사함, 그밖에 좀 더 훌륭하심을 말하고 또 말합니다. 전화 받으실 수 있는 훌륭함, 설거지 할 수 있는 대단함, 함께 외출할 수 있는 기적적인 일, 모든 것이 감사하고 대단히 훌륭한 일임을 한참 뒤인 미래로 가보면 훤히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치매 11년 차이신 우리 엄마의 사진을 비교해 드리며 한해가 다르게 약해지시는 엄마의 변화된 사진을 보여드리며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보시길 간절히 말씀드립니다. 지금이 얼마나 훌륭하게 할 수 있는 가능한 일이 많은지를!

 

 

 

 

 

서재호 기자  mbtimkt@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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