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만 발병하는 자궁암 중에 가장 흔한 경우는 자궁경부암이다. 약 90%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근래에는 암으로 발전하기도 전에 절제, 소작술 (레이저나 고주파로 염증 부위를 열로 지진다) 등으로 치료하기 때문에 자궁암 환자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기억에 남는 환자 중에 50대의 자궁내막암 환자가 있다. 대학병원에서 자궁내막암 수술에 관해 설명을 듣던 이분은 “저 수술 안 할래요”라고 선언해 버렸다. 자궁내막암 수술에서는 골반 내 림프절을 많이 걷어내곤 하는데, 그로 인해 합병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다리가 붓거나 신경 손상이 오는 등의 부작용이 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던 환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저는 사업을 하고 있고 스키가 취미인데, 이 두 가지를 할 수 없다면 제 인생은 의미가 없습니다.”

대체의학 분야에서 여러 가지 치료법을 알아보던 환자는 여러 루트로 비수술적 치료를 찾아보다가 결국 나에게 찾아오게 되었다. 이분에게 동맥 내 항암 치료와 하이푸를 병행해서 시술하자 육안으로 보이는 암 종양은 거의 사라졌다. 그래도 나는 대학병원에 가서 항암 치료를 받아보기를 권했으나, 스키를 너무나 좋아하는 이 환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이었는지 항암 치료는 끝까지 거부했다.

‘수술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집하고 있던 이 환자는 하이푸 덕분에 치료 후에도 뉴질랜드, 호주 등을 다니면서 여전히 스키 마니아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재발의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에 자궁암의 경우에는 하이푸 시술만 하는 것이 권장할 만한 치료법이 아니었지만 이 환자의 경우에는 본인에게 만족스러운 최선의 치료법이 되었다.

또 다른 여성암으로 꼽을 수 있는 유방암은 내가 항암 치료를 권하는 몇 안되는 질병 중 하나다. 우리 병원에서는 4기 유방암 환자가 아닌 이상은 웬만하면 유방암 환자는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암도 암 나름이어서 유방암의 경우는 항암 치료가 효과를 잘 발휘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가암정보센터 통계를 보면 유방암 완치율 (5년 생존률)은 림프절이나 주위 조직에 전이가 없는 경우 98.1%, 림프절 전이가 있는 경우 90.8%, 원격전이 (4기) 의 경우 37.3%다. 40대 후반의 여성으로 반도체 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이 병원을 찾아왔다. 자녀들이 한창 학교 다닐 나이라 면서 수술을 받기 위해 두 달 이상 휴직을 하면 회사에서 잘리고 말 거라며 하이푸 시술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이푸 시술은 며칠 만 휴가를 내면 회복 기간이 따로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의 사정을 감안해서 하이푸 시술로 암 종양을 괴사시키는 치료를 해 주는 대신에 대학병원에서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꼭 병행하겠다고 약속을 받아냈다. 1년 후 CT를 찍어봤을 때 암세포가 보이지 않았고, 괴사된 병변만 흔적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완치라고도 부를 수 있는 상태였다.

당시에는 반도체 관련 공장에서 일하다 희귀병이나 암 진단을 받은 근로자에게 산업재해 판정이 내려지는 사건들이 있었다. 벤젠이나 납 노출로 인해 혈액암에 걸리거나, 환기 시설 미비 등으로 인해 유방암에 걸린 환자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때였다. 이 환자 역시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이 암 발병의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커서 재발 방지를 위해 다른 일을 구할 것을 권하고 싶었지만, 개인 신상에 관한 일이라 깊이 관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치료 결과는 좋았지만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았던 사례라 기억에 남는다.

요즘에는 유방암 환자들이 스스로 먼저 수술을 안 받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몸에 칼을 안대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항암 치료에 대한 왜곡된 편견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늘 안타깝다. 췌장암이나 간암 환자의 경우에는 항암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환자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유방암의 경우는 좀 다르다. 나의 경우에는 “몇 달만 고생하면 된다”고 말하는 편이다. 대학병원에서는 교수들이 5분 정도밖에 진료를 볼 수가 없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아니면 진료실 밖으로 나와 간호사나 코디네이터라도 자세한 얘기를 해주면 좋으련만 그런 시스템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런 의료 환경에 있다 보면 환자들에게 이런 왜곡된 편견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싶다. 같은 의사로서 나도 책임을 통감한다.

환자들은 올바른 정보를 병원에서 듣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카페 같은 곳에서 따로 찾아볼 수밖에 없다. “인터넷 카페 들어가 보니까 유방암은 다 전이되고 재발돼서 항암이나 수술이 필요없다고 하던데요”라는 환자들이 종종 있다. 그런데 완치된 환자들은 그런 카페에 있을 리가 없다. 전이되고 재발된 환자들만 카페에 모여 있기 십상이니 정보는 왜곡되고 편중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의 환자들은 스스로 아무 치료도 받지 않거나, 대체의학이나 한의원을 찾아간다.

유방암이 18cm 정도까지 커져 있던 환자가 내원했다. 유방 피부로 암이 침범한 상태였고 상당히 컸다. 고름도 나오고 냄새도 나고 출혈까지 많다 보니 헤모글로빈 수치가 6까지 떨어져 있을 정도로 빈혈이 있었다. 옆으로 누워도 똑바로 누워도 아파서 잠을 못 자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정밀검사 결과를 살펴보니 간, 림프절, 뼈 등으로 다발성 전이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다른 것보다 우선 잠을 자야하고 출혈을 잡아야 했다. 유방으로 가는 혈관들 중 동맥을 찾아내서 동맥 내 항암 치료와 색전술을 시행했다. 색전술이란 막는다는 뜻인데 그렇게 출혈을 막은 후에는 고강도 집속 초음파인 하이푸를 시행했다. 수술 후 경과를 보니 흐물흐물하던 암 덩어리들이 우두두 떨어지는 것이 보였고, 얇게 남아 있는 것 외에 나머지는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두 달 만에 처음으로 깨지 않고 푹 잤어요.”라고 말하는 환자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시술 이후 출혈이 없어지고 잠을 잘 자니까 혈색까지 돌아오고 컨디션도 좋아지고 있었다. 이후 환자와 상담하면서 상태를 설명해 주고 항암 치료를 권했다. 하지만 그 환자는 자연치유만 고집하다가 결국엔 암 종양이 다시 커진 상태로 내원했다. 두 달 만이었다.

“급성기 치료는 끝났으니까 이제는 항암을 해야 합니다”라고 쫓아보내다시피 했다.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항암 치료를 받고 있지만 너무 늦게 와서 항암제가 안 듣고 있다고 한다. 하이푸 치료 후 잠도 잘 자고 편안해지다 보니 환자의 만족도는 컸지만, 사후 관리에 신경 쓰지 않으면 이후의 상황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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