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을 자면 기억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달콤한 낮잠은 우리 몸과 뇌를 안정시켜 치매에 걸릴 확률을 3분의 1로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뇌가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없어서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J교수 역시 낮잠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J교수는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밤낮없이 열심히 사느라 늘 잠이 부족하다. 주로 밤에 일을 많이 하는 편이어서 평균 3시간 정도밖에 못 잔다. 낮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밤에 집중이 잘 되고 글도 잘 써지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수면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 늘 점심 식사 후에는 20~30분 정도 낮잠을 즐긴다. 그러고 나면 몸도 머리도 개운해지고 활력이 살아난다. 이렇게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낮잠을 즐긴 지도 벌써 수십 년이 되었다. 이러한 생활패턴이 굳어지니 스스로도 불편함을 못 느끼고 피로감도 별로 없었다.

문제는 약 1년 전부터 낮잠을 자도 예전처럼 머리와 몸이 개운하지 않다는 것이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도 오후 내내 졸리고 집중이 안 되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날들이 많아졌다. 밤에 잠자는 시간을 많이 늘렸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잠을 잔 것 같지가 않았다. 아내는 잠자리가 험해지고 악몽을 꾸는지 자다가 고래고래 소리까지 지른다며 J교수를 걱정했다.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 묻지만 별로 그럴 만한 일도 없었다.

잠은 잘 자야 한다. 잘 잔다는 것은 무조건 많이 자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너무 많이 자도 너무 적게 자도 머리에 부담을 준다. 적당한 수면 시간은 7시간이며 적어도 5시간, 많아도 9시간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 잠깐씩 낮잠을 자는 것도 괜찮다. 다만 낮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 낮에 여러 번 자야 할 정도 심하게 졸리면 뇌 건강을 걱정해야 한다. 특히 그 전날 충분히 잤는데도 낮에 심하게 졸리는 경우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루이바디 치매가 될 가능성이 높다.

루이바디 치매는 알츠하이머 치매와 같은 퇴행성 치매의 일종으로 뇌에 루이바디라는 작은 덩어리(소체)가 생겨 뚜렷한 환시나 망상 등 파킨슨 증상과 인지 장애가 발생한다. 파킨슨병에서 나타나는 운동장애처럼 다리를 끌거나 근육 경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파킨슨병보다는 증상이 약하다. 주의력이나 조심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특히 루이바디 치매는 증상 기복이 심하다. 인지기능과 각성 상태의 기복이 크고, 각성이 떨어지는 것이 졸림 증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루 4회 이상 잠에 빠질 정도로 낮잠 회수가 잦아진 경우나 5분 내에 곯아떨어지는 병적인 경우는 루이바디 치매 환자에게서 잘 나타나며, 알츠하이머 치매보다 세 배 많은 60퍼센트나 된다. 10분 이내 잠으로 빠지는 경우도 알츠하이머 치매보다 두 배 많은 약 80퍼센트 정도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낮에 많이 졸리는 경우 중 J교수처럼 밤에 잠자리가 험하고 악몽을 심하게 꾸는 등의 렘수면행동장애가 겹치는 경우는 뇌가 나빠지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그렇다고 당장 또는 빠른 시일 내에 치매로 진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오래 지속되면 머리가 나빠지고 결국 루이바디 치매로 변해갈 가능성이 있다.

렘수면 행동장애는 꿈을 꾸는 렘수면 단계에서 일어나며 흔히 잠꼬대와 유사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일반적인 잠꼬대에 어떤 행동이 동반되는 경우 렘수면 행동장애로 볼 수 있고, 선명한 대화를 나누거나 손동작, 발동작, 선명한 웃음 등 깨어 있을 때처럼 행동하며 꿈의 내용을 행동으로 옮겨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이처럼 렘수면 행동장애가 심해지거나, 주의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처신을 잘 못하거나,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거나, 길눈이 어두워지거나, 운전 능력이 서툴러지거나, 행동이 굼떠지면 치매 검사, 특히 루이바디 치매에 대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이유 없이 낮에 심하게 졸거나 낮잠이 늘어나는 경우에도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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