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사는 40대 남성이 병원을 찾아왔다. 간에서 기인한 암 인 원발성 (原發性) 간암 환자였다. 색전술을 권유받아서 치료하다가 폐로 크게 전이가 된 상태였는데, CT를 보니까 폐암 덩어리가 너무 크게 퍼져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더 이상 할 게 없습니다”는 말을 듣고 그가 처 음에 찾아갔던 곳은 자연치유를 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경제적으 로 다소 여유가 있었던 이분은 몸이 호전될 것을 기대하며 산삼을 1억 5천만 원어치 정도 먹었다고 했다. 그런데 몸 상태는 기대치와 다른 양상을 보였다.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 같으면서도 피검사를 하거나 CT를 찍어보면 암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산삼을 계속 먹 으면 안 되겠다 생각한 환자는 복용을 중단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찾다가 우리 병원을 방문한 것이었다.

“개복 수술을 하지 않고도 종양을 괴사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다른 건 필요없으니 제발 기침만 멎게 해주세요.” 기침 때문에 잠을 못 이루던 이분은 우리 병원이 비수술적 치료 인 하이푸 시술을 하는 곳이라는 얘기를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간암의 경우에는 1회 시술만으로도 하이푸 치료가 완료되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이 환자는 폐로 광범위하게 전이가 많이 된 상태로 기관지를 압 박하고 있는 탓에 잦은 기침을 하고 있었다. 원발성 간암 부위와 폐 전이 일부는 하이푸로 치료할 수 있었지만 폐 전이 부위를 모두 커 버하기 위해서는 혈관치료도 병행해야 했다.

3단계로 치료를 설계했고, 먼저 동맥내 항암 치료를 시도하기로 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항암 치료 (항암화학요법)’는 정맥을 통해 전신으로 항암제를 뿌려주는 ‘전신 항암 치료’다. 반면에 동맥 내 항암 치료는 동맥을 통해 필요한 부위에 국소적으로 적용하는 치료다. 이 치료의 좋은 점은 100% 확률은 아닐지라도 상당수의 확률로 기침이 멎는다는 것이다. (우리 병원 임상으로는 70%)

다음 날 기침이 멎고 환자가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하이푸 치료를 했다. 간은 색전술로 비교적 치료가 잘돼 있는 상태였기 때문 에 하이푸를 심하게 적용할 필요가 없었고, 암이 점점 커지고 있는 폐 쪽에 하이푸를 세게 적용했다. 수면마취로 진행된 시술 후에 환자는 회복실로 옮겨졌다. 하이푸 치료는 시술 후에 다음날 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회복 기간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다. 그 다음으로는 키트루다 (Keytruda) 면역항암제 치료를 적용했다. 면역항암요법은 인체의 면역체계를 활성화시켜 암세포와 싸우 게 하는 암 치료법인데, 미국 제약회사 MSD의 면역항암제인 키트 루다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때문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피부 암의 일종인 악성 흑색종이 간에서 뇌로 전이돼 “이제 저는 곧 떠 납니다”라는 굿바이 인터뷰를 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당시 91세) 이 이 처방을 받고 완치 판정을 받아 “다시 돌아왔다”고 인터뷰를 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3단계 치료를 마치고 그로부터 2개월 후 CT 촬영을 다시 했다. 암의 크기는 절반이 줄어들어 있는 상태였고, 특히 하이푸 시술을 했던 부위가 가장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또 6개월 후 CT 사진을 다 시 보니 거기서 또 절반이 줄어들어 있는 상태였다. 돋보기로 열을 모으듯이 초음파로 열을 모아 종양을 괴사시키는 하이푸 치료 후 에 환자의 체내에 존재하는 괴사된 종양 조직은 크기와 환자 상태 에 따라 짧게는 9개월, 길게는 2 ~ 3년 안에 체내에 흡수되어 결국엔 사라진다.

이 환자는 이후로 다시 골프를 즐길 정도로 회복되어 갔다. 처음 의 상태를 생각하면 의학적 소견으로는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 니었을 분이다. 이처럼 동맥내 항암 치료와 하이푸 치료는 기침을 멎게 하고 암세포를 드라마틱하게 줄여주는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에 종양외과에서는 하이푸처럼 절개, 마취, 출혈, 흉터가 없 이 열로 종양을 치료하는 방법들이 여러 가지 등장했다. 고주파 열 치료 (radiofrequency ablation) 가 있고, 레이저, 마이크로웨이브 등이 등장했다.

열로 종양을 괴사시켰을 때 의사들은 면역과의 상관관계를 느 끼곤 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여의도성모병원에서 하이푸 임 상실험을 했을 때의 일이다. 하이푸로 오른쪽 유방암을 괴사시켰 는데, 왼쪽 유방암도 같이 줄어드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하이푸 뿐만 아니라 열 치료들은 모두 그런 사례들이 있다. ‘전신 면역에 뭔가 관여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열로 암세포를 깨 뜨렸을 때 세포 안의 물질들이 나오면서 우리 몸에는 항원항체반 응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면역반응). 이것을 면역 시스템이 인지 하면서 암세포를 공격한다는 추측을 해보고 있다.

사실 암이라는 건 복잡하고 어려운 병이다. 그런데도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완치를 희망하며 기적의 치료법이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적인 치료 목표를 세워야 한다. 암세포를 모두 없애겠다는 것은 특수한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고, 보통은 완치보다는 ‘완벽한 관리’를 추구해야 한다.

특히 4기 환자들, 전이된 환자들에게는 하이푸, 면역항암제, 동맥 내 항암 치료가 완벽한 관리를 하는 데 중요한 툴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모든 환자가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만 붙들고 있기에는 너무 무모한 측면이 있다.

또 어느 치료법 하나만 고집하면서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따 른다.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될 수 있다. 어느 치료는 이 부분을 공격하고 또 다른 치료는 다른 측면을 공격하는 식 으로 서로 보완해서 적용하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이 폐암 전이 환자에게 적용한 치료법들은 환자의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치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환자의 만족도 또한 높았다. 나는 환자들에게 “항암 절대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하진 않 는다. 항암과 하이푸를 병행해서 치료한다든지, 항암과 면역항암제 치료를 병행한다든지 하는 방법을 권한다.

암 환자들은 전이가 시작되면 심하게 좌절하곤 하지만, 중요한 장기가 기능을 잃어버릴 정도로 암이 커지기 전까지는 급격하게 상태가 나빠지는 건 아니다. 적극적인 치료와 관리로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한 채 지내는 분들도 있으니까 차분하게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치료하기를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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