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

 

최근 수소탄까지 개발한 것이 인정되는 북한 핵을 둘러싸고 전운이 감도는 한반도 상황은 이른바‘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진‘역사의 반복‘을 생각게 한다.

기원전 5세기 기존 패권국 스파르타에 급부상한 신흥강국 아테네의 도전으로 벌어진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기록한 그리스 역사가이자 장군이었던 투키디데스는‘신흥강대국이 기존 세력판도를 뒤흔들면 양측이 무력충돌로 치닫게 된다.’고 분석했다. 전쟁 원인을 예언이나 도덕문제, 우연이 아닌 국제적 문제로 파악한 것이다.

여기에 착안해‘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이란 용어를 만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 벨퍼 센터의 그레이엄 앨리슨 소장은 미-중 정상회담 직전인 지난 4월2일 WT 칼럼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미국의 세계 경제생산 비중은 1980년 22%에서 오늘날 16%로 떨어진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에 2%에서 18%로 증가했다. -- 신흥강대국 중국과 패권국 미국의 대립과 대치는 향후 수년간 고조되는‘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것이다.”

 

국제적인 안보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앨리슨 소장은“지난 500년 동안 세계에서 지배적인 국가의 위치는 16번 붕괴했으며 그중 12건은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서였다”며“냉전시대 미·소 관계, 20세기 초 미·영 관계 등 무력충돌을 피한 4번은 도전하는 국가와 도전받는 국가의 태도와 행동에 엄청난 조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중국의 꿈’(中國夢)을 내건 시진핑과‘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로 당선한 트럼프는 무역 갈등, 대만독립, 북핵 등 3가지 국제적 이슈가 상대국이 자신들의 핵심 야망을 달성하는 데 최대 장애물이라고 간주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누구도 원치 않는 양국의 전쟁 발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중 두 강대국이 이 대결을 관리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트럼프와 시진핑 두 지도자에게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세와 관련, 트럼프는‘북한은 전쟁을 구걸하고, 한국은 북한에 대화를 애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핵과 사드를 놓고 대립하는 남북 대결은 100여 년 전의 조선반도에서 벌어졌던 것처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전초기지인 한반도를 결과적으로 미·중 대리전쟁 격전장으로 만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한반도 정세와 관련, 미·중 패권 다툼이‘투키디데스 함정’으로 빠져들고 있는 극동에서 최근 벌어지는 외교 참사에 대해 야당 측은 외교 색맹(色盲)이 된 집권층 무능을 지적하고 있다.

북핵의 실전배치 등, 핵 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더 이상 방치할‘시간이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10월 13일, 7일, 1일 북한과의 핵 협상은 ‘바보짓’이고 ‘시간 낭비’라며 북한과의 협상 무용론을 거듭 역설했다.

마이클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10월 19일(현지 시각)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가 안보 포럼에 참석해 "북한이 몇 달 안에 미국을 타격할 핵미사일 능력을 완성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CNN 등이 보도했다. 폼페이오 국장은 이날 "북한은 목표로 하는 능력에 충분히 근접했다"며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가정 아래 정책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면서 "구체적으로 몇 달 뒤 김정은이 핵무기를 완성할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지금은 (북한의)'마지막 단계'를 어떻게 멈출지에 대해 생각할 때"라고 했다.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도 이날 같은 포럼에서 "(북한 핵무기에 대비하는 데) 아직 늦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다 돼가고 있다"고 했다. 북핵 문제와 관련, 우리로서는 자주국방까지 준비하기엔 시간이 너무 없다.

결국“동아시아 근현대사에 나타난‘시간과의 경쟁’이 상호간의 이해와 공존을 가로막았다.”(고 민두기 박사)는 지적은 열강 동맹국들과 한국 사이에 북핵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시간과의 경쟁’으로 재현되고 있다.

 

 

■ ‘연작처당(燕雀處堂)’교훈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고, 일본이 일어서니, 조선사람 조심해라.”

 

기원전 236년,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秦)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조(趙)나라를 침공했을 때였다. 이웃나라 위(魏)나라 조정에서 대책회의가 열렸다. 한 대신이 나서서 진나라와 조나라의 전쟁에서 누가 이기든 위나라한테는 이로울 뿐이라고 말했다. 진나라가 승리하면 진나라와 화친을 하고, 진나라가 패배하면 그 틈을 타서 진나라를 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나라 재상 자순(子順)은“탐욕스런 진나라가 조나라를 정복한 뒤, 분명히 우리나라도 공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위나라의 대처가 집에 불이나 대들보를 태워도 불구경하며 재질거리는 제비와 참새 같다고 질타하였다.

 

“제비나 참새는 모두 대들보 아래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운다. 그런데 어느 날 마루와 추녀에 불이 났는데도 설마 대들보까지 오겠느냐며 그냥 머물러 있었다. 결국 둥지는 불길에 휩싸이고 만다. 진나라는 탐욕스런 나라로, 조나라를 이기면 위나라로 쳐들어올 것이 분명하다. 불길이 추녀까지만 오고 대들보에 이르지 않을 것으로 여기는 게 제비나 참새의 생각과 뭐가 다른가.”

 

이 고사(故事)에서‘처마 밑에 사는 제비와 참새’라는 뜻의‘연작처당(燕雀處堂)’이란 말이 생겼다. <공총자(孔叢子)>의‘논세(論勢)편’에 실려 있는 고사성어로‘편안한 생활에 젖어있으면 위험이 닥쳐오는 줄 모른다’는 점을 비유한말이다.

 

“오대주(五大洲) 사람들이 다 조선이 위태롭다 하는데, 조선인들만 절박한 재앙을 알지 못하니, 집에 불이 난지도 모르고 재재거리는 처마 밑 제비나 참새 꼴과 무엇이 다르겠소.”

 

1880년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이 국제정세에 무지한 조선왕조 당국자들에게 <조선책략> 마지막에 적은‘연작처당(燕雀處堂)’의 경구는, 한 세기를 훌쩍 넘어 핵실험이 자행되고 있는 오늘 우리의 상황에 비수(匕首)처럼 꽂힌다.

최근 미국과 북한 정권간의 전쟁위기로 치닫는 ‘치킨게임’을 바라보며,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고 일본을 잊지 말고 조선사람 조심해라.”말이 새삼스럽게 들린다. 1945년 광복된 한반도 민중들 사이에 회자됐던 4행시다.

국가적 위기에 처한 우리가 당면한 현실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또 다시 100여 년 전 망국(亡國)의 비극을 면치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하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보통사람도 책임이 있다.”는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100여년 전 국제 정세가 조선이라는 나라의 의지와 무관하게 조선이라는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었듯이, 최근 국제정세 흐름을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의 의지와 무관하게 대한민국 운명이 결정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국력이 나약하면 우리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 기우(杞憂)이길 바라지만 2017년 가을,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기신호가 불길한 예감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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