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 좀 고쳐주세요!”

모 대학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치매 확진을 받았다며 잘생긴 40대 중반의 부부가 진료실로 들어서면서 다급하게 하는 소리였다. 대체로 딸이 친정 부모의 치매 치료를 위해 모셔오는 경우는 많아도 며느리나 아들이 모시고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인물도 훤칠하고 고왔지만 남다른 효성과 인품에 마음이 끌렸다.

어머님이 혼자 사신 지 오래되었는데 아파트 몇 층에 당신 집이 있는지 헷갈려서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경비원의 도움으로 집을 찾은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고 주로 집에만 계셔서 자주 전화를 드리는데도 오히려 전화를 안 한다고 역정을 내거나 평소와 달리 사리에 맞지 않고 얼토당토않은 말씀을 자주 하셨다. 결국 치매 정밀검사 후 치매 확진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어머님은 의사의 진단을 인정하지 않았다. 스스로 치매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며 ‘치매’라는 말만 들어도 역정을 냈다. 효심이 깊은 부부는 어머님께 절대로 치매라는 말을 하지 말고 몸이 허해서 보약을 드셔야 한다고 이야기해달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사실 어제까지는 치매가 아니었는데 오늘부터 치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치매는 뇌가 오랜 세월에 걸쳐 나빠진 결과물이다. 정도가 지나치게 나빠지면 치매라고 하지만 뚜렷한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진단 기준을 바꾸면 멀쩡한 사람도 치매일 수 있고, 뇌가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는 사람은 치매와 다를 바 없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집을 못 찾거나 대소변을 실례하고 정신이 나가야만 치매인 것은 아니다.

중기나 말기 증상과 달리 치매 초기에는 주로 기억력 장애와 다른 인지기능이 떨어져 제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정도이다. 즉 회사생활이 힘들어지거나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어지거나 여러 방면으로 굼뜬 상태도 치매라고 볼 수 있다.

치매 초기에는 자신이 중기, 말기 치매에서 보이는 치매의 부정적인 면과 확연히 다르다고 판단하거나 치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자신이 치매 환자라는 사실을 극구 부인하고 화를 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는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인지기능은 상당히 떨어져 있어도 자존감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아서 주의해야 한다. 말기 치매가 아닌 이상 감정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감정이 단순하여 좋고 싫음으로 반응하며, 제어능력이 약해 흥분도 잘한다. 인지 능력이 떨어져서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절대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환자의 자존심을 지켜주며 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치료라고 설득하면 대부분 받아들인다.

잠시 뒤 진료실로 모셔온 어머님은 70대 후반인데도 자태가 곱고 단정하며 고상한 분위기였다. 자신의 지적 수준이 높음을 적극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영어를 많이 섞어서 이야기했지만 여러모로 어설퍼 보였다. 간단한 진찰과 기본적인 검사를 하고 나서 어머님이 머리가 참 좋다고 칭찬해드리고 이런 좋은 머리를 오래 유지하려면 뇌 보약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다행히 치매가 아니라고 자존심을 세워드리니 열심히 드시겠다고 약속했다.

치매 초기에는 많이 진행이 된 중기, 말기에 비해 재활 치료의 대상이 될 ‘활력 떨어진 뇌세포’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물론 남아 있는 뇌세포조차 치매 이전보다는 세포 수도 부족하고 많이 취약한 상태여서 치료를 조금만 게을리 해도 금방 부서지고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어머님께 지속적인 치료를 약속받고 치료에 들어갔다. 소음인의 경향이 많아 소화기를 따뜻하게 하는 약과 기를 보하는 인삼 같은 약재를 기본으로 하고, 텔로미어를 늘리는 것으로 알려진 황기를 포함하여 혈액순환을 개선하는 당귀와 뇌세포 재활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약재를 처방하였다.

약을 복용한 지 서너 달이 지난 후에는 환자의 상태가 많이 회복되어 전철을 갈아타고 서울에 사는 아들을 보러 갈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현재 8개월째 복용 중인데 상당히 호전된 증세를 보이고 있다.

치매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약 2년 전후로, 인지기능 개선제 치료를 받으면 3년쯤 지나면서 중기 치매가 되어 간병인의 도움을 받더라도 독거생활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뇌세포 재활 치료는 빨리 시작할수록 인지개선 효과가 더 크고 치매 진행 속도도 더 느려져 삶의 질을 훨씬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치매 확진에 관계없이 뇌기능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거나 증상이 있다면 당장 뇌세포 재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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