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대 치매 환자에게 과연 적극적인 치매 치료가 필요할까? 이 질문에 망설임이나 갈등 없이 시원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아마도 경제 상황이나 처한 환경에 따라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그동안 다양한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을 지켜봐온 의사로서 환자의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치매 환자에게 적극적인 치료를 권유한다. 환자와 가족들이 확연히 다른 삶의 질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던 90세 J회장은 10여 년 전에 중풍이 생겼고, 합병증으로 왼쪽 팔이 마비되어 불편을 겪고 있으며, 이후 파킨슨병까지 찾아왔다. 비록 몸이 불편했지만 평생 경영해오던 사업을 포기할 수 없어 왕성하게 활동하며 외국 출장도 자주 다녔다. 하지만 출장 중에 호텔방을 못 찾는 곤란한 일을 겪고 난 후 병원에서 혈관 치매와 파킨슨 치매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으나 점점 악화되면서 결국 알츠하이머 치매까지 겹쳐 있다는 새로운 진단을 받았다.

J회장은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밤에 잠도 못자고 가족들까지 힘들게 했다. 안절부절 못하며 정신적으로 매우 혼란한 섬망 증세로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욕이나 헛소리를 심하게 하거나 환각 증세, 특히 환시가 심하여 헛것을 보고 두려움에 떨기도 하여 가족들을 안타깝게 했다. 게다가 증상의 기복도 심한 편이었다.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되면서 두 발로 걷지도 못하고 주로 누워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대소변도 못 가리고 식사도 떠먹여야 했으며 24시간 간병인이 반드시 옆에 붙어서 생활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치매가 진행되면서 부인에게 험한 소리를 하고 고집은 더 세져서 다른 사람의 말은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 살고 있는 중년의 딸만 고집스레 찾아대는 바람에 결국 딸이 친정에 와서 아버지를 돌봐드려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고, 가족 모두가 J회장의 치매 증상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은 뇌세포를 재활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와 한약 치료를 원했다. 해마와 후각구의 일부 세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뇌세포는 재생이 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볼 때 뇌세포의 재생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재활은 가능하다. 이 환자의 경우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뇌세포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 염려되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통받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나 환자 자신을 위해서도 치료 방법에 변화를 주어야 했다. 뇌세포의 재활을 위해 기존 치료와 병행하여 한약 치료를 시작했다.

치매 환자는 인지 능력이나 판단력 등 많은 부분에서 6세 이하의 어린아이 수준보다 못하다. 쓴 한약을 잘 복용해야 치료가 될 텐데, 약을 처방하면서도 쓰다고 거부할까봐 걱정이 앞섰다.

한 달이 지나고 아들이 와서 환자의 근황을 전했다. 다행히 약을 잘 드신다고 했다. 처음에는 약을 드시게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망상이 심해서 약을 드리면 약에 독이 들어 있는 것 아니냐며 거부하여 결국 아들이 먼저 마시고 안심시켜 드린 후에야 겨우 약을 드셨다고 한다. 그렇게 약 먹기를 힘들어하던 분이 이제는 오히려 약을 좋아하신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지극한 효심과 현명한 대처로 인한 결과였다.

환자가 약을 잘 복용하니 증상도 조금씩 호전되어 갔다. 치료를 시작한 지 11개월쯤 되던 어느 날, 드디어 환자가 직접 병원을 찾았다. 놀랍게도 엘리베이터에서 40미터쯤 떨어진 거리를 두 발로 걸어오셨다. 치료 전과 달리 음식을 차려드리면 식탁까지 걸어가서 손수 식사도 하고, 대소변 뒤처리도 직접 하고, 소변도 두 시간 정도는 참을 수 있게 되어 외식도 가능해졌다고 한다. 잠도 잘 주무시고 섬망이나 망상, 환각 증세도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삶의 질이 높아진 탓에 환자도 가족들도 표정이 훨씬 밝아져 있었다.

총 20개월 동안 치료를 받은 뒤 한약을 중지했다. 그로부터 약 6개월 후에 만난 환자분 아들은 “우리 아버지 아직도 말짱해요!” 하고 말했다. 이 말은 확실히 뇌세포가 재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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