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치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가까운 지인이 부친상을 당해 조문을 했다. 89세에 노환으로 돌 아가셨다고 한다. 두세 달 전부터 전체적인 신체 기능이 쇠약해지 면서 기력이 떨어지더니 한 달 전부터는 가족들 얼굴도 알아보지 못 할 만큼 정신이 오락가락하다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자식들 잘 키 우고 큰 병 없이 건강하게 지내다가 노환으로 짧게 앓다가 가셨다며 다들 호상이라 했다. 세상 어떤 죽음에도 호상은 없다지만 비교적 편안히 돌아가신 고인과 남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려니 생각 한다.

또 다른 지인의 모친은 93세에도 별다른 신체 질병 없이 정정 하셨다. 식사도 잘하시고 아침마다 동네 뒷산에 오를 정도였다.3년전 치매 진단을 받아 약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들어 급격히 나빠지면서 가족들이 감당할 여건이 되지 않자 요 양원으로 모시는 문제를 두고 고민 중이었다. 치매 환자 가족들이 흔하게 겪는 일이다.

기간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어 세상 을 떠나기 전 일정 기간을 치매 상태로 지낸다. 그 기간이 짧으면 노 환이라 여기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 역시 인지기능이 많이 떨어진 치매 기간에 속한다. 이런 기간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 이를 치매로 인식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나 계산력 등 뇌기능이 떨어지고 신체 움 직임이 둔해지는 것에 대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적어도 이제까지 우리의 정서는 모든 생명체의 노쇠 현상 에 대해 너그럽고 허용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시대와 환경이 달라 졌다. 줄기세포 연구나 나노로봇 연구와 같은 과학기술의 발달은 생 명 연장의 꿈을 실현시켜 노화를 늦추고 평균수명을 끌어올리고 있 다. 바야흐로 백세시대가 온 것이다.

의학이 발달하여 수명이 늘어나면서 병들거나 약해진 노후도 길어졌다. 신체적 노후는 의학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그런대로 기능 을 오래 지탱할 수 있지만 이미 부서져 사라진 뇌세포를 새로 만들 기는 어렵다. 결국 평균수명이 늘어났다는 것은 뇌기능이 떨어진 노 후가 길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백세시대에 치매는 누구에게나 찾아오게 되어 있는 예약된 손 님이다. 수명이 짧은 시대에는 치매가 오더라도 중증으로 진행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서 치매 환자로 통계되는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늘어난 백세시대에는 노후 기간이 길어지므로 원치 않더라도 치매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치매 환자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나이 들수록 뇌기능이 나빠져 삶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치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 문제는 얼마나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있 다. 건강하게 백수를 누릴 수도 있고, 병상에 누워 가족들의 짐이 되 거나 그나마도 돌보는 사람조차 없이 외로이 노년을 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국치매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65세 이상 노인 중 약 10퍼센트인 약 70만 명, 즉 열 명 중 한 명이 치매 환자라고 한다. 또한 2025년에 100만 명을 돌파하고, 2040년이 되면 약 12퍼센트 인 200만 명의 치매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수치상으로는 단지 2퍼센트 증가에 불과하지만 환자 수는 무려 세 배로 증가한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큰 대도시 하나의 모든 사람이 전 부 치매 환자인 셈이 된다.

기나긴 노후를 치매 상태로 보내고 싶지 않다면 지금부터 치매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젊은 시절 삶의 질을 좌우하던 그 모든 것 들에 우선하여 노후의 삶을 좌우하는 최우선 기준은 신체 건강과 더불어 정신 건강에 있기 때문이다.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지 않으면 본인은 물론 배우자와 가족들의 삶까지 피폐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정신줄을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만 백세시대를 축복으로 누릴 수 있 을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도시환경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