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한반도, 싸드문제로 미·중 각축장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에서 미-중 패권경쟁은 2017년 9월3일,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더욱 치열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제 북핵은 ‘회피할 수 없는 압박’과‘해결책 없는 선택’을 남ㆍ북에 엄혹하게 강요하고 있다. 북핵 보유로 한반도에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 즉‘게임의 룰’이 바뀌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비핵화 문제’는 이제 핵 협상 의제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ICBM(대륙간 핵탄도미사일) 능력을 보유했음을 천명한 북한의 벼랑끝 외교 전략은 북한과 미국 간에 서로 꼬리가 물린 뱀처럼‘너도 죽고 나도 죽자’는 한국인 특유의 ‘논개식‘ 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8월 6일 "미국이 핵 방망이와 제재 몽둥이를 휘두르며 우리 국가를 감히 건드리는 날에는 본토가 상상할 수 없는 불바다 속에 빠져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북한은 지난 7일 관영 조선중앙통신 성명을 통해 “미국이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 발전권을 말살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를 끝끝내 조작해 낸 이상 우리는 이미 천명한 대로 단호한 정의의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며“우리 국가와 인민을 상대로 저지르고 있는 미국의 극악한 범죄의 대가를 천백배로 결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도 ‘불’을 든‘ ’말 폭탄’으로 독설(毒舌) 레토릭을 구사, 보통사람도 기피할 언어폭력과 위협적인 위하(威嚇)의 ‘말 전쟁’이 미국 북한 최고 지도자 사이에 계속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휴가 중이던 8월 8일(현지시간) 북한이 미국을 계속 위협하면 “지금까지 세계가 목격하지 못한‘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할 것”이라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정상적인 상태를 넘어 매우 위협적이다”라며 말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직전 트루먼의 대일 압박과 같은 초강경 메시지로 북한에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자살 임무를 맡은 로켓맨’이라고 비난한데 이어 9월19일(현지시각) UN총회연설에서 북한의‘완전한 파괴(totally destroy)’를 선언했다. 김정은은 21일 “불장난을 즐기는 불망나니, 깡패임에 틀림없다”면서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dotard)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는 사상 초유의 초강경발언을 쏟아냈다. 이에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김정은이 “명백한 미치광이(Mad man) 로켓맨, 전에 없던 방식으로 시험(test)당할 것”이라고 맞대응했다.

이른바 광인이론(狂人理論: Madman Theory)을 의식하는지 원색적인 미치광이 발언으로 이전투구(泥田鬪狗)식 설전(舌戰)을 벌이고 있다. 미국 언론에서 트럼프의‘미치광이 타령’에 ‘김정은과 진흙탕 싸움’을 자제하라는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북ㆍ미간의 혼탁한 말 폭탄이 불을 뿜는 가운데 북한 핵위협의 신빙성은 한-미간 동맹와해를 목표로 설정한 한-미 이간책(離間策)을 시험하고 있다. 21세기 초반, 2017년 현재 대한민국은 주변 강대국 국제정치의‘피도 눈물도 없는’냉혹한 틀 안에서, 운신의 폭이 극도로 제한된 가운데 국가의 존망(存亡)이 걸린 위기를 맞았다. 우리의 전략적 선택에 따라 나라의 명운(命運)과 민족의 삶이 결정되는 국가적 위기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남북대립은 백강전투, 6·25전쟁 등과 같이 겉으로 보기에는 한반도의 통일전쟁이지만, 실상은 대륙과 해양세력 간의 세계사적인 패권 다툼이 역사의 공시성(共時性)을 실감시키는 숙명적 구도다.”

 

북핵을 둘러싸고 빚어진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결구도는 과거보다 더 복잡다기(複雜多技)하게 얽혀있지만 그 본질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대결구도다. 미-소 패권국이 주도한 냉전체제가 소련의 해체로 붕괴된 뒤 세계를 미국이 일극(一極)으로 주도해왔다. 일극 중심으로 세계가 경영되면서 그동안 강대국 미국에 눌려있던 중국이 경제력과 국방력 등에서 대국굴기(大國屈起), 이른바 G2로 부상, 아시아의 맹주를 노리면서 미 - 중 갈등이 시작됐다.

1980년대 말, 냉전체제의 종식과 대외 시장개방과 함께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의 대외정책의 기조였던 도광양회(韜光養晦:칼을 칼집에 넣어 빛을 감춰 밖으로 새지 않게 하면서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 즉‘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은밀히 힘을 기른’중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쇠퇴 기미를 보이자 마침내‘숨겨진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중국은 개방이후 20여년 급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우며 과거 중화사상(中華思想)을 표방한 세계 중심지국(中心之國)으로 등장했다. 특히 시진핑으로 권력이 집중되면서‘제2의 모택동’을 꿈꾸는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해지면서 패권국으로 위상정립이 국가적 과제가 된 것이다.

중국이 활발한 자원외교 등으로 아프리카를 포함한 전 방위로 세력을 확장하며 패권국 야망을 드러내자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정책’으로 중국에 대한 견제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 한국은, 북한 핵에 대응해 배치한 사드 문제를 놓고 해양세력인 미국과 대륙세력인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이라는 파천황(破天荒)의 국가적 위기는 사실상 한국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기존의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협력) 전략’으로는 당면한 위기를 타개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한편 중국 정부는 북핵과 과련, '쌍중단'(雙中斷·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동시 중단)과 '쌍궤병행'(雙軌竝行·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을 북핵 해결책으로 제안했다. 중국 한반도 전문가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호주 '동아시아포럼'지(9월호)에 중국 정부가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비해 미국·한국과 협력해 한반도 위기 시 비상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기고문을 실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평소 중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온 자 원장은 기고문에서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비 ▲ 북한 핵무기 처리 ▲ 대규모 난민 유입 대응 ▲ 북한 사회질서 회복 ▲ 북한 정권의 재편 등 4대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미국의 군사적 공격의 결과로 북한 김정은 정권이 붕괴하면 중국이나 미국은 핵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북한의 핵무기를 어떻게 처리할지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 동북부 지역에 북한 난민을 수용할 안전지대를 설치하고, 한반도 통일을 수용할지에 대해 미국과 대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017년 오늘의 한반도 현실은, 마치 데자뷔처럼 130년 전 대륙세력이나 해양세력을 대표하는 강대국에 줄을 서야했던 조선 왕조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 19세기 말 제국주의 팽창정책을 펼치던 유럽의 강대국 영국과 러시아가 동북아시아‘은둔의 나라’ 조선의 거문도를 놓고 벌였던 패권 경쟁과 유사한 상황이 현재 진행 중이다. 당시의 영국 대신 이번에는 미국이, 러시아 대신 중국이 그 역할을 맡아 파워게임을 한반도에서 벌이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고, 그 패턴은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같은 형태로 반복된다”는, 그래서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 된다’는 투키디데스의 잠언(箴言)이 실감나는 상황이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살펴보니 ‘남에게는 희극이지만 나에게는 비극이다’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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