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렬 교수 컬럼]평행이론(平行理論)으로 살펴본 거문도(巨文島)사건과 사드(THAAD)

                                  박종렬 (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천CEO아카데미 원장)

1장. 세계는 거대한 체스판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 된다.” - 투키디데스

역사는 영원히 반복되는가?

오늘날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4대 강대국인 열강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복잡 미묘한 국제정치에 당사자인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인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반도 문제는 동북아시아를 뛰어넘어“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국제정치 논리대로 세계 최대 강대국들의 가장 화급하고 주요한 세계사적 외교 현안으로 떠올랐다. 한반도의 이 같은 움직임은 마치 19세기 말엽, 1880년대 조선반도의 상황을 시차와 인물만 바꿔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100여 년 전인 19세기말, 지리멸렬(支離滅裂)하던 우리 민족 앞에 놓인 현실은 참담했다. 당시 세계사를 주도해 오던 서구열강들은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미개(未開)한 약소국 쟁탈전에 나섰다. 더 넓은 영토와 부를 확보하기 위한 이른바 제국주의 시대가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 조선은 열강의 먹잇감이 되어 망국(亡國)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산업화한 서구 열강의 서세동점과 이에 편승한 일본의 부상이라는 국제적 현상은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이자 폐쇄적이고 쇠락해가고 있던 봉건왕조 조선으로선 놀랍고 두려운 충격이었을 것이다. 대외적으론 거센 제국주의 격랑이 몰아치는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일엽편주(一葉片舟)가 되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내부적으론 침몰해 가는 배안에서 개국파(開國派)와 쇄국파(鎖國派)가 끊임없이 맞서 국론은 크게 분열되었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수구파와 열정만 넘친 개화파 사이에 치열한 권력투쟁은 붕당(朋黨)의 파벌싸움으로 치달았다. 부패한 관료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로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국가경영 역량이 부족했던 용렬한 암군(暗君)을 둘러싼 시아버지 흥선 대원군과 며느리 명성황후의 죽기살기식 살벌한 궁중암투는 왕조의 멸망을 재촉했다.

 

■ ‘평행이론’의 재현인가

 

이른바 평행이론(平行理論)처럼 19세기 말 조선왕조가 당면했던 바로 그 형국이 100여년이란 시차(時差)를 두고, 21세기 초 한반도에서 형식만 다를 뿐 원형(原型)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현실에 모골이 송연해질 따름이다. 조선 말기 서세동점의 격랑 속에서 일본이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내세우며 급속하게 근대국가화를 추진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싸고 청나라와 조선은 이 경쟁에서 탈락하면서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이 같은 상황을“동아시아 근현대사에 나타난‘시간과의 경쟁’이 상호간의 이해와 공존을 가로막았다”(故 민두기 박사)는 지적은 오늘날 북핵의 실전배치 시간문제를 두고 또 다시‘시간과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동북아 정세에서 재현되고 있다.‘역사는 영원히 반복된다.’는 투키디데스의 경구를 음미케 한다.

 

첫째, 대한민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국가의 명운을 걸고 반발하는 중국, 아관파천을 연상시키는 러시아의 은근한 개입, 가스라 태프트 밀약을 떠올리게 하는 미국과 일본의 유착(癒着), 4강에 줄을 서야하는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진 대한민국의 상황 등 100여년 전 한반도 주변상황과 흡사한 데자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둘째, 19세기말 청나라와 러시아, 일본의 첨예한 대립과 동북아시아 패권경쟁은 한반도가 전쟁터가 되어 청ㆍ일전쟁, 러ㆍ일전쟁을 치르고야 정리됐다. 1885년의 영국의 일방적인 거문도 점령을 둘러싼 당시 열강들의 패권다툼은 오늘날 UN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인 그들의 국가전략과 너무도 유사하다. 북핵문제 처리를 놓고 새롭게 전개될 한반도의 지정학적 변화에 대해 미·중·러·일 4강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으로 편을 가른 각국의 국가전략에 따른 패권장악을 놓고 치열한 전략적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셋째, 거문도 사건 당시 조선 국론이 개국-쇄국파로 나뉘어 갑신정변처럼 생사를 건 심각한 내홍(內訌)을 겪었던 것처럼 최근 싸드 배치를 놓고 보수와 진보 진영이 심리적 내전(內戰) 상태에 빠져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국가전략이 패권확보를 위해 더 넓은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무력침공을 수단으로 삼았다면 오늘날 그 전략이 경제전쟁 양상으로 바뀌었을 뿐, 자국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국가전략의 근본적 골간은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땅뺏기 싸움’이라는 국제정치 게임은‘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 법칙’이 적용되는 철저한 약육강식(弱肉强食) 세계로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오늘날 한반도에도 시차를 두고 반복되는 국제정치에서 평행이론(平行理論)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7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G20 정상회담을 통해 다자 외교 무대에 데뷔한 뒤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한반도 문제 당사자인 한국에게는 합의를 이끌 힘이 없다.”며 토로한 것은 패권 국가들이 자국 국가이익을 위해 혈안이 돼 있던 조선 말기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국제정치의 현실을 반증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문 대통령이 “남북 관계는 한국이 운전석에 앉아 주도권을 잡는다는 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동의했다.”면서 '한국 운전석론'을 강조했다. 그러나 G20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제재를 둘러싼 각국의 인식 차이와 팽팽한 기싸움을 접하면서 지정학적으로 한계가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위상을 실감한 발언으로 들린다.

 

"북한의 탄도 미사일 도발에 대한 제재 방안을 두고 국제사회의 합의가 쉽지 않다는 현실을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할 건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임에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없고 우리에게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이다. G20 회의에서도 주요 의제인 자유무역주의와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 G20은 합의하지 못했다. 각 나라가 국익을 앞세우는 외교를 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국익을 중심에 두고 국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국익을 관철할 수 있도록 우리 외교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절실하게 느꼈다." (헤럴드경제, 7월11일)     ~~2편이 곧 올라 올 것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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