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미디어]

 

기억 속 최초의 탄핵
탄핵. 아마 필자와 비슷한 나이대의 친구들은 지난 3월 10일, 인용(認容)이 확정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닐 것이다. 2004년 3월 12일, 16대 대통령이었던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은 재적의원 271명 중 193명의 찬성으로 가결이 되었다. 소추 사유로는 ‘국법질서 문란 행위로 언론사 등과의 인터뷰 중 특정 정당을 지지한 행위’와 ‘헌법기관을 경시했다는 점’을 들고, ‘권력형 부정부패 연루 혐의’, ‘국정파탄의 책임’ 등을 적시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일부 사유의 법률 위반은 인정되지만 대통령을 그만둘 만큼의 중대한 사유는 아니다’라며 기각하였다.

 

옐로 저널리즘
옐로 페이퍼(Yellow Paper) 또는 옐로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선정적이고 비도덕적인 기사들을 과도하게 취재, 보도하는 경향’을 이르는 말이다. 언론사는 올바른 정보를 양질의 콘텐츠로 국민에게 전달하여 ‘알권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주된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자극적인 내용으로 관심을 끌기에만 급급한 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언론사들이 있고, 우리는 그들을 ‘옐로 저널리즘’이라 칭한다. 여기서 의문점 하나. 어째서 ‘옐로’일까? 보통 부정적인 것을 나타내는 색은 ‘흑색’이나 ‘적색’인데 말이다. 실제로 선거의 필수품, 네거티브를 ‘흑색선전’이라고 표현하지 않는가. 이를 이해하려면 18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뉴욕에는 <월드(World)>지와 <저널(Journal)>지, 두 거대 언론사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선제타격은 월드지였다. 화려한 사진과 만평, 스포츠기사를 통해 ‘선정주의’에 호소하며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한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저널지는 월드지의 만평가, ‘리처드 F. 아웃콜트’를 스카우트한다. 당시 ‘옐로 키드’라는 만화를 연재했는데, 덕분에 저널지의 매출은 급등했다. 결국 월드지가 선정주의적 경쟁에서 물러나며 끝이 난다. 옐로 저널리즘의 탄생이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집권 당시, 필자는 아직 초등학생이었다. 집권 말기가 되어서야 중학교에 입학했으니 정치에 문외한이었으며, 신문 또한 보지 않았다. 기껏해야 네이버를 통해 스포츠 란에서 야구나 축구 기사를 보는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기억이 나는 댓글이 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그랬다. 정치, 경제, 사회, 스포츠 등 기사의 유형과 종류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댓글이 가장 높은 공감 수를 기록했다. 당시 최고의 유행어였다.

정부 출범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부가 언론의 합당한 비판과 견제의 감시를 받을 테니 언론도 사실보도와 진실보도의 원칙에 충실히 임해 달라”고 했다. 언론에게 ‘Watch Dog’이 될 것을 요구하여 ‘건전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원한 것이다. 보수신문의 여론 독점이 ‘정치적 영향과 자본력에 기반을 둔 불공정경쟁’이라는 인식에 기초하여 언론시장 독과점 구조 해체·완화를 위한 ‘신문법’ 제정을 추진했다. 이른바 ‘조중동’을 필두로 한 메이저 언론사들의 독과점 구조를 완화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개혁은 실패했다. 건전한 긴장 관계를 원함과 동시에 왜곡보도에 정부가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여 언론보도를 오보, 악의적 비판, 건전 비판, 단순보도, 긍정보도로 구분해 적극 대응했다. 하지만 이상향이었던 것일까. 건전한 긴장 관계는 ‘적대 관계’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정부가 나서 언론자유를 남용하는 언론사를 치유하겠다는 목적이었지만 오히려 언론자유를 규제·통제하는 꼴이 되었다. 결국 언론과 정부 모두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상실했으며, 정치혐오에 부채질을 한 셈이다. 정책홍보에서 언론의 긍정적 협조를 이끌어내지 못했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사들은 대통령을 비난하고 비방하며 공격하는 내용만이 담긴 사설만을 내보냈다. ‘공격적 저널리즘’이 언론 전체에 팽배해 있었다.

 

언론의 밥그릇 채우기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이 아닌 이상 정부와 언론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언론이 유리한 것은 자명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잡아가고 고문을 (비록 J모 종편 채널의 S모 앵커를 갈아 치우라는 외압이 수차례 있었지만) 하진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오직 인터넷 매체에서만 인터뷰를 하는 등의 파격적 행보를 보이니 언론사들은 밥그릇 걱정이 생기지 않겠는가. 

약자가 이기기를 원하는 이른바 ‘언더독(Underdog) 효과' 이미 유신 체제를 거친 우리나라는 언론을 약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인간은 평범한 기사보다는 자극적인 기사들을 좋아한다. 게다가 당시 세계경제 성장률은 5.1%였는데, 우리나라는 4.5%로 평균만 못했다. 가정경제는 어려워졌고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중들은 누군가 탓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때마침 나타난 사람 좋아 보이는 대통령 ‘노무현’ 그는 이 모든 것들이 혼합된 총알받이가 된 것이다. 언론은 독자들이 ‘탓할 사람’의 니즈와 본인들의 밥그릇 두 개를 전부 충족시키기 위해 ‘공격적 저널리즘’을 펼친 것이다. 결과적으로 노무현은 사회 모든 문제의 근원 취급을 당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콩나물 값이 올라도 노무현, 롯데 자이언츠가 져도 노무현, 옆 집 애기가 울어도 노무현.

이를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김해 봉하마을에서의 연설에서 “제가 언제 경제 살리겠다고 말이나 했습니까? 안했지만은…(후략)”이라며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토로하기도 했다.

 

모든 것을 반전시킨 노무현의 ‘자살’
우리는 시간을 예수 탄생 전, 후로 나눈다. Before Christ, After Death.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또한 ‘자살’을 기점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정책 면에서는 몰라도 사람의 됨됨이, 청렴성 등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던 ‘사람’ 노무현은 퇴임 후 뇌물 수수 혐의를 받으며 ‘뇌물현’이라는 별명이 생긴다. 또한 인터넷 유저들은 ‘아내가 받았다’는 발언을 두고 ‘아, 내가 받았다’라며 비꼬았으며 뇌물로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피아제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것 또한 ‘디시인사이드’ 등 각종 사이트에서 다양하게 패러디되었다.

그러나 2009년 5월 23일. 그는 칩거하던 봉하마을의 뒷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했다. 이를 두고 정치적 타살이라던가 하는 음모론도 많았지만, 극단적 선택 이후 노무현을 비난하는 여론은 불식되었으며, 마을은 온통 노란 종이비행기로 뒤덮였다.

2017년, 5.9 장미대선을 앞뒀던 3월.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들은 너도나도 자신이 ‘노무현 적자’임을 주장하며 이른바 ‘노무현 계승 대결’이 펼쳐졌다. 물론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두 후보는 각각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비서실장, 왼팔 역할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프레임으로 경선을 준비할 수 있었을까. 아직도 비난의 여론에 시달렸을 것이며 ‘노무현’을 계승한다는 것은 ‘뇌물’을 계승한단 말로 들리지 않았을까.

 

‘옐로’저널리즘과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계된 것이라면 대부분 ‘노란색’이 들어있다. 옐로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을 접한 순간, 필자는 바로 ‘노무현’이 떠올랐다. 비록 ‘옐로 키드’에서 비롯된 말이라지만, ‘노무현’의 ‘노란색’, 그리고 그를 향한 언론의 보도 방식을 대입해도 그 의미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지금도 언론과 정치에 있어서 좋은 소스(source)다. 일례로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선후보는 대선 유세 기간 동안 노무현을 줄기차게 물어뜯어 보수층을 결집시켰으며, 언론들은 이에 맞추어 ‘옐로 저널리즘’식 기사를 내보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약, 정책면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지만, ‘사람’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의견이 일치한다. 소탈하고 인간적이었던 ‘바보’ 노무현. 재임 중이나 퇴임 후의 연설에서도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여실히 드러난다. 언론에게 딱 물어뜯기기 좋았던. 그런 면모.

 

빈 수레는 요란하지 않다
지식과 커뮤니케이션 효과의 관계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대중매체의 영향력은 지식수준이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아닌, 보통인 사람에게 가장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속담이 있다. 틀렸다. 빈 수레는 요란하지 않다. 흔들릴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꽉 찬 수레 또한 마찬가지다. 흔들릴 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차 있기 때문에 요란할 수가 없다. 애매하게 무언가 실려 있어야 요란하다.

우리는 애매한 수레가 아닐까. 언론이 ‘옐로 저널리즘’으로 생전의 노무현을 공격했을 때, 사건의 일면만을 보고 그토록 요란하게 욕하진 않았는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기삿거리가 되기 딱 좋은 선택을 했을 때, 그제야 언론의 동정에 편승하진 않았는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고, 그렇다고 해서 생전의 업적과 과오가 사라지지도, 생기지도 않는다. 결국 바뀌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다. 언젠가부터 언론의 ‘XX 저널리즘’식의 보도에 자신의 프레임을 맞춰나가고 있다.

(작성일 5월 18일 기준)지금으로부터 5일 후인 5월 23일은 노무현 서거 8주기다. 그의 죽음에는 다양한 원인들이 있겠으나, 언론의 공격은 큰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리고 언론들이 그러한 저널리즘에 빠져있는 것을 방종하고, 오히려 힘을 실어준 것은 바로 우리들이 아니었나. 정치적 스탠스를 떠나서, 누군가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갔다는 것은 사실이다. 언론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본인만의 확실한 기준을 견지했을 때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진일보한 저널리즘과 언론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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