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렬 교수의 제왕학] 1. 손학규

손학규 대권행보의 명암…보는 것을 믿을 것인가? 믿는 것을 볼 것인가?



“시베리아를 넘어, 툰드라를 넘어 가겠다.”

2007년 3월 19일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외부인사로는 처음으로 김지하 시인을 만나면서 꺼낸 말이다. 손대표는 탈당 승부수, 여당에서 야당으로 이적해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대선 경선 탈락, 2년여 칩거, 다시 제1야당 대표 등 순탄치 않은 신산(辛酸)의 세월을 헤쳐왔다.

최근 민주당 당대표 최고위원이 된 손학규 대표는 “잃어버린 600만표를 찾아 오겠다”며 정권탈환을 염두에 둔 차기 대권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 재기에 성공했다. 손 대표가 말하는 600만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의 중도는 좌우 모두에게 공동경비구역 같은 곳이다. 이 표가 어디로 쏠리는가가 대권의 행보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씨가 민주신당으로 건너 왔을 당시 사람들은 그 변신의 원죄를 생각하며 미구에 닥쳐올 험난한 경로를 예상했는지 모른다. 지난 3년여의 시간은 손학규라는 브랜드에 비에 젖은 칙칙한 겨울 낙엽처럼 끈질기에 자신을 따라 붙어온 탈당과 당적 변경이라는 주홍(朱紅)글씨를 벗기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번 당대표 경선에서 호남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했다는 점에서 그의 귀환은 이러한 상징성을 띠고 있음에 분명하다.

또한 대선후보 조사에서도 당대표 당선이라는 전과(戰果)때문이기는 하지만 박근혜씨와 맞설 대항마로 10%대의 지지율을 웃돌고 있는 현실이다. 그의 선택과 당선은 이제 그가 펼칠 리더십의 연락륙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을 것으로 보인다.

리더쉽은 어디에서 오는가? 전국민의 눈과 귀가 대선 후보자들한테 쏠려있다고 가정하지만 실제로 만나서 악수하고 이야기 나누어본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미디어에서 접한 행적이나 이미지를 가지고 사람들은 남의 말을 듣고서 평가할 뿐이다. 국민이라는 이름의 소통채널은 이처럼 동굴처럼 막혀있는 자가 있고 터널처럼 뚫고 나가는 자가 있다.

확실히 근자의 리더쉽은 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한다. 스스로가 콘텐츠를 양산해내는 한편의 영화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즉 감동이다. 지난 몇 년간 계속 안정적 3할을 친 타자 보다는 중요한 대목에서, 예를 들면 코리안 시리즈에서 홈런 한방을 친 일할 타자를 사람들은 더 기억하기 마련이다. 물론 3할이 밑받침된 극적 홈런의 주인공이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민주당 대표가 되었다. 빅3라고 자칭 흥행성을 보장했지만 사실 그렇게 드라마틱 하지는 못했다 .애초부터 전선이 형성될 조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경선 자체가 주는 역동성이 담보되지 못한 이합집산의 결과일 뿐이며 그들만의 잔치였을 뿐이다. 대표 및 최고위원 경선이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낼 것처럼 기대감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진정 국민을 위한 경선이어야 함에도 민주당이라는 원초적인 한계 속에서 벌어진 집안잔치에 불과했을 뿐이다.

손학규 대표는 누구인가? 김영삼의 추천으로 민자당 소속 국회의원이 되고, 그후 신한국당, 한나라당에서 대선후보 물망에 올랐던 인물이다. 운동권 출신인 그는 노선을 달리한 여당 소속이 딜레마였을 것이다. 탈당을 기회로 삼아 정체성을 확인하고, 중도 통합의 이미지를 재창출하기 위해 춘천 칩거로 묵은 때를 벗으려 했고 이제 민주당이라는 제1야당의 영수로 화려한 복귀식을 가졌다.



그러나 그의 리더쉽은 경기도지사 시절의 그것이 전부나 마찬가지이다. 노동운동을 하였고 여당내 야당역할을 자임하던 그였지만 대학교수로서 새로운 변신에 실패한 결과 전학을 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전학생(轉學生)의 설움을 이제 다 떨쳐버리고 새로운 국면을 전개해 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전학생이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DJP연합은 새로 신설된 학교에 들어간것이나 마찬가지이고 YS의 민자당 합당도 그러하다. 전학생의 성공신화는 방법이 없다. 그 학교내에서 일그러진 영웅이 될 망정 싸움 짱이 되는 방법 밖에 없다. 전학생이 대표선수가 되는 성공신화는 그래서 스토리를 필요로 한다.

스토리는 감동을 낳는다. 스토리는 성공을 향해가는 긴장과 클라이맥스(정점)를 향해 치닿을 때 사람들은 감동을 먹는다고 햇다. 어디에 어떤 스토리를 넣어야 하는가? 과거 처럼 영원한 제왕은 없다. 시대적 제왕이 있을 뿐이다. 손학규는 ‘버리면 얻는다’는 요결(要訣)를 체득했다. 여당을 버리면서 정체성을 얻었고, 수차의 출마 권유를 뿌리치면서 ‘정치에서 얻으려면 주라’는 민심의 요체(要諦)를 깨달았다. 자신을 다 버리려고 춘천에서 양계(養鷄)를 하였다. 그야말로 민심의 바다에서 병아리와 어미 닭의 조응(照應)을 일컫는 줄탁동기의 깨달음이다. 아마 그는 수많은 닭을 치면서 군계(群鷄)를 보고 일학(一鶴)을 꿈꾸었을 지도 모른다.

권력은 나눠갖는 것이 아니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독점이다. 그래서 고종과 대원군처럼 부자지간에도 세불양립(勢不兩立)이다. 안타깝게도 권력은 바겐의 상품이 아니고 The Winner Takes It all의 게임이다. 그야말로 all or nothing이다. 지금 이러저러한 대선후보 여론조사는 그야말로 가십기사 거리에 불과하다. 세종대왕 리더쉽이라고 스스로 명하고 있는 리더쉽! 리더쉽은 결과에서 나오는 것인가. 아니다. 이미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전자는 보는 것을 믿는다. 후자는 믿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지난번 대권과 관련해 월간조선에 차길진 법사 예언시가 손대표의 앞날을 더욱 궁금하게 한다.

홀연히 상서로운 빛이 무궁화 동산에 비추고(忽見祥暾暎槿域)

밝은 달에 학이 날아올라 부를 날을 맞이하네(明月鶴飛應召日)

손 대표는 앞으로 일년이 지나 대권후보로 간다면 당대표를 내놓고 뛰어야 한다. 그럼 당대표는 대선으로 가기 위한 중요한 감투가 될 것이다. 섣부른 행보는 저항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나아가 그 저항은 자신의 최대 자산인 통합적 온건함의 이미지를 나약함으로 치환 시키는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손 대표는 아직 보여준 것이 없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자칫 그 보여주는 일말의 정치적 리더쉽의 실체가 그에게는 치명타가 될지, 반전의 기회로 상승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장자(莊子) 소요유편의 한마디가 생각난다. 대붕도남(大鵬圖南)! 손대표가 대붕이면 이미 도남을 시작했으리라 믿는다. 전설의 큰 새인 대붕이 날개로 3천리 솟아올라 바람타고 9만리를 남명(南冥)으로 간다했다. 천하를 거뭐지려는 대장부가 가는 길은 범인과는 확연히 달라야 한다. 거센 파고를 넘어 고지를 향해 가는 그의 귀착지가 궁금하다.

[박종렬: 가천대학교 가천CEO아카데미 원장/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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