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원마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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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관리위원회의 직원이라면 꼭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선거 없을 때 뭐 하세요?” 그 질문이 당혹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 질문 뒤에 담긴 생각이 당혹스러워서 처음에는 대답을 머뭇거리곤 했다. 물론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선거 없을 땐 놀고먹겠네, 라는 생각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주로 은행원 이야기를 했다. 4시에 은행 창구업무가 끝난다고 은행원들이 퇴근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적절한 대답이 아니다. 그저 답을 피하는 말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선거가 없을 때라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 ‘비어있는’ 시간인가?

요즘의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 시기에 다음 선거를 준비합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선거 하나를 치르는 데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법정절차 사무만도 크게 10단계 정도로 나눌 수 있고 세부사항은 그보다 몇 배가 늘어난다. 그러니 개별 선거를 직접 관리하는 것만 따져도 대개 선거가 있는 달의 반년에서 일 년 전부터는 준비가 시작된다. 관련 법규며 편람과 지침을 정비하고 변경된 내용을 숙지하는 일 또한 만만하지 않다.

선거는 개표가 끝나면 끝인 것이 아니다. 선거가 끝나면 후보자들의 선거비용에 대해 실제조사를 하고 득표율에 따라 비용을 얼마나 보전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업무는 대개 선거 후 두 달 정도는 소요된다. 뿐만 아니라 매년 4월과 10월의 재·보궐선거에 비선거구 직원들이 파견되므로 거의 매년 선거를 치른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선거가 끝나면 선거 자체에 대한 평가는 물론이고 투표율 분석이 이루어진다. 대개 몇십만 표에 대해 분야별·사항별로 투표율 자체는 어떠한지, 전체 투표율 중 유효투표와 무효투표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무효투표율이 높거나 낮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분석하게 된다. 작업 자체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고 새삼 투표지의 무게를 실감하게 되는 기간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준비가 오로지 선관위 직원만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유권자들은 선거 때마다 늘 그 후보자가 그 후보자라고 하거나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라는 말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모든 선거를 종류별로 치르고 난 지금은,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시민들의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사는 지역, 내가 사는 나라의 일을 책임지게 된 대표자들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야말로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자세 일 것이다.

그러나 일반 유권자가 정책 혹은 정치인에 대해 자세히 알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단편적이기 쉽고, 그나마도 뉴스거리가 되는 일부에 쏠리는 경향이 있다.

유권자들의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 중 하나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소개하고 싶다. 여기에는 역대 선거의 후보자나 각 후보자별 득표수 등 선거의 기본적인 자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정책과 공약에 관한 자료를 모은 사이트가 연결되어 있다. 정책·공약 알리미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유권자도 공약 제안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각종 정책과 공약에 대해 알아보고 자신이 제안하고 싶은 공약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또 제시해 볼 수 있다. 그렇게 한다면 선거의 과정에서 왔다 가는 손님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라의 주인이자 유권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단풍도 끝나가는 11월이다. 나무는 겨울을 나기 위해 무거운 잎을 떨구고 있다. 더 나아가 가지 끝마다 겨울눈을 맺으며 다가올 봄을 준비하는 데 한창이다. 우리도 다음 선거를 준비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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